국민일보가 5일 파악한 지방의회의원 해외출장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각종 단위의 의장협의회에서 다녀온 해외출장은 지난해 7월 임기 시작 이후 지난달까지 최소 7건으로 파악됐다. 이달에도 1건의 해외출장이 예정돼 있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의장이 모인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부터 도내 시군구의장들이 모인 기초의회의장협의회까지 다양한 단위에서 출장이 이뤄졌다.
경기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이하 경기도의장협의회)는 지난 1월 6일부터 15일까지 9박10일 일정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이 협의회는 도내 31개 시군의회 의장이 모여 지방자치 발전을 논의하는 기구다. 이 중 기초의회 의장 12명과 수행원 등 총 26명이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 목적은 ‘국외 선진도시의 우수 시책과 주요시설 견학을 통해 글로벌 정책 역량과 의정 활동의 전문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장보고서 내용은 대부분 유명 관광지 견학 일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스페인 광장, 세비야 대성당, 알람브라 궁전,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 구엘 공원 등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유명 관광지가 두루 포함됐다. 공식 기관 방문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협의회 차원의 출장이라 해도 소속 의회의 심사는 받아야 한다. 각 의회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 예산은 각 시도의회가 의장의 항공비 159만원과 수행원의 여비 400만원 등 약 559만원을 부담했다. 그 밖의 경비는 경기도의장협의회에서 부담했다고 하는데, 협의회 운영비는 각 시군의회에서 걷은 분담금이다. 사실상 전액 주민 세금으로 떠나는 해외출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심사 과정은 무력했다. 여주시의회는 지난해 12월 심사위원회를 열었는데, 회의는 단 7분 만에 끝났다. 공개된 회의록에는 한 심사위원이 “경기도에서 다 가는데 여주는 안 갈 수 없잖아”라고 말하자 ‘모두 웃음’이라는 회의실 내부 반응까지 기록돼 있다. 이 출장 계획은 출석위원 5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화성시의회가 공개한 심사위원회 회의록은 1장 남짓 요약본으로만 작성돼 있어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조차 없다.
각 의회 심사에서 외유성 출장을 지적해도 협의회 차원의 출장이라 계획을 수정할 수도 없었다. 연천군의회 심사에서는 “공적 방문과 관련된 기관 방문이 없어 이 부분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의회 관계자는 “그 부분은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며 “사무국에서 계획을 수립해 최종적으로 각 시군의회에 통보한다. 솔직히 저희가 일정에 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사실상 심사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의회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그럼에도 연천군의회는 참석 위원 7명 전원 동의로 의장의 해외출장을 가결했다.
이와 관련해 협의회 사무국은 각 의회 심사 과정에서 지적이 제기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무국 관계자는 “지적이 있었다는 걸 처음 들었다”며 “협의회는 운영 계획만 짜는 곳이라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심사 회의록을 공개한 곳은 화성시, 여주시, 연천군 등 3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9곳은 심사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지도 않았다. 심사가 있었는지조차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협의회 측은 외유성 출장이라는 지적에 대해 “원래 출장 목적에 선진국의 관광 벤치마킹도 포함돼 있다”며 “관광지를 방문한 것은 출장 목적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장협의회 출장 계획에 대한 ‘졸속 심사’는 전국 지방의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전남 영암군의회는 지난달 20일 심사위원회를 열고 오는 21일부터 8박10일 일정으로 미국과 캐나다로 향하는 전라남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의 출장 계획을 심사했다. 회의는 단 12분 만에 끝났다. ‘협의회에서 가는 거라 여기서 논할 건 아닌 것 같다’는 식의 심사위원 발언이 회의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광역의회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의장이 모인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의도 지난 2월 7박9일 일정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의장 1인당 경비는 약 530만원으로 총 1억8000만원 규모다. 출장 기간 8일 중 4일은 공식 일정 없이 ‘문화 탐방’으로 채워져 있었다. 성가족성당, 톨레도 구시가지, 알람브라 궁전 등 지역 대표 관광지가 두루 포함됐다.
게다가 협의회는 귀국 후 30일이 지났지만 출장 결과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협의회는 국민일보 취재가 들어가자 39일만인 지난 3일 뒤늦게 각 의회에 출장 결과보고서를 공유했다. 협의회는 2019년 ‘귀국 후 30일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마련해 각 시도의회에 제공했는데, 스스로 권고를 위반했다. 또 협의회 주관 출장의 경우 협의회가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각 시도의회로 넘기는 구조여서 전국 시도의회도 무더기로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강민 이정헌 김승연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