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 아니라면서… 지방의원 출국, 크리스마스·연말 집중

입력 2023-04-06 00:03
경기도 오산시의회 소속 의원과 직원들이 지난해 12월 29일 이탈리아 성베드로 성당 대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왼쪽 사진). 경남 고성군의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23일 싱가포르 공무국외출장 중 현지 최대 식물원·조경공원인 가든스바이더베이 앞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서 캡처

국민일보가 5일 지방의회의원의 국외공무출장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12월에만 전국에서 최소 57건의 해외출장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기관 방문이나 공식 일정을 잡기 어려운 연말 시기에 이뤄진 출장은 ‘외유성’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외여비’로 편성된 예산을 연내 처리하기 위해 졸속으로 추진한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의회에서 지난해 12월 셋째주와 넷째주에 출발한 해외출장 내역은 최소 45건으로 확인됐다. 12월에 진행된 57건 중 대부분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집중된 셈이다.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여행 규칙’ 표준안은 최소 ‘1일 1기관’ 방문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해외 기관도 대부분 쉬기 때문에 공식 방문 일정을 잡기가 어렵다. 실제 각 지방의회 결과 보고서에서도 외유성이 의심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경남 고성군의회는 지난해 12월 22~26일 3박5일 일정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이들은 쇼핑가로 유명한 관광지인 오차드 거리를 방문했다. 계획서에는 ‘오차드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안전 관리를 벤치마킹’하겠다고 적혀 있었으나 결과 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의회 관계자는 “현지 시설물과 조형물을 보고 왔다.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 설명을 듣진 않았다”며 “경미한 내용이라 빠졌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공식 방문 일정은 23일 단 하루에 몰려 있었다. 지난해 11월 열린 심사위원회에서 이를 지적하자 의회 관계자는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 주말이라 기관 방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출장 계획서는 기관 방문에 적합하지 않은 일정임에도 결국 심사를 통과했다. 내실 있는 출장을 위해 행안부가 ‘출장기간의 타당성’을 심사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아예 크리스마스와 연말를 맞아 ‘문화 탐방’을 내걸고 이탈리아 주요 관광지를 다녀온 곳도 있었다. 경기도 오산시의회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30일까지 7박9일 동안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출장 목적으로 ‘국외 도시의 지방의회 운영, 교통정책, 도시재생 등에 대한 기관 방문 및 벤치마킹’ 등을 내세웠지만 실제 방문한 기관은 티볼리 의회 등 3곳뿐이었다.

나머지 일정은 대부분 ‘문화 탐방’을 명분으로 한 관광지 방문이었다. 결과 보고서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화산 폭발로 인한 폐허의 유적만이 남아 있는 도시(폼페이) 탐방”이라고 올렸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과 시뇨리아 광장에서 “천연자원과 문화유적 보존·관리 현황을 살펴봤다”며 이를 의정활동에 반영하겠다고 적었다. 나머지 일정은 대다수 로마 관광객이 찾는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바티칸 박물관, 성베드로 성당과 광장 등 유명 관광지로 채워졌다.


이처럼 연말에 해외출장이 집중 이뤄지는 것은 매년 각 의회 예산에 편성돼 있는 ‘국외여비’를 처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미사용 예산을 다음 해로 이월하려면 의회 의결을 다시 받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다 쓰지 못한 예산을 연말에 무리하게 소진하는 것이다.

경상북도의회에선 기획경제위원회, 행정보건복지위원회, 문화환경위원회 3개 위원회가 지난해 12월 22일 같은 날 8~9일 일정으로 동시다발적인 해외출장을 떠났다. 심사위원회에선 “무리한 여행을 추진하고 있다” “3개 위원회가 모두 크리스마스에는 기관 방문이 원활하지 않다는 말을 했다” “내부적으로 ‘연말에 급하게 가야 하느냐’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없었는가”라는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도의회 관계자는 “(해외출장) 예산은 이월이 안 되는 예산”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올해 예산이 세워진 상황”이라며 “12월 의회 정례회가 끝나면 9일 정도의 여유가 있어 연말이지만 추진하게 됐다”고 답했다. 결국 출장 계획은 모두 가결됐다.

한꺼번에 의원 전체가 출장을 가면서 억대의 경비를 쓴 경우도 있었다. 경남 김해시의회 의원 23명은 지난달 28일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7박9일의 해외출장을 떠났다. 전체 의원 25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 함께 간 것이다. 출장 예산은 1억4880만원으로, 이번 전수조사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출장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 28일 열린 김해시의회 심사위원회에선 “이렇게 많이 가도 의회는 지장이 없는가” “2주가 빠지는데 한꺼번에 가면 안 시끄럽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해시의회 관계자는 “다른 데도 그렇게 가는 경우가 많다”며 “회기 때 같으면 사실 못 나간다. 의원님 두 분이 남아 계신다”고 해명했다. 심사위원회는 “다음부턴 상임위원회별이나 반반 나눠서 가는 조건”을 내걸고 해당 출장계획서를 승인했다.

제주도의회는 임기 시작 후 최소 16건의 해외출장을 떠나 전국 243개 지방의회 가운데 가장 많은 출장을 집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출장이 잦다보니 여러 위원회가 동일한 국가를 중복 방문하고, 내용도 비슷했다.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와 행정자치위원회는 각각 지난해 8월과 12월 말레이시아를 찾으며 다른 출장 목적을 내세웠다. 하지만 방문지는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자야, 말라카로 똑같았고 겐팅하이랜드, 세인트폴 교회 등 주요 관광지 방문도 비슷했다. 이들은 연수 총평에서 “발전을 거듭해온 도시”(환경도시위) “계획적 개발이 잘된 지역”(행정자치위)이라는 흡사한 평가를 내렸고 ‘제주 국제자유도시 추진에 반영’이라는 공통된 결론을 적었다.

이정헌 이강민 김승연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