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가상화폐

입력 2023-04-06 04:10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수메르인들의 화폐는 보리였다. 월급으로 받은 보리를 기름, 염소, 보리 외 식량 등 생필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20세기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통용된 화폐는 담배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인들도 담배를 지불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빵 한 덩이는 담배 열두 개비, 마가린 300g은 담배 30개비에 교환되는 식이었다.

국가 권력이 주화 형태의 법정화폐를 만든 건 기원전 7세기 리디아가 처음이었다. 지금의 튀르키예 서부 지역인 리디아에서 발행된 주화는 표준화된 무게의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으며 리디아의 왕이 이를 보증한다는 내용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표준화와 국가보증은 오늘날까지 모든 화폐의 핵심 양식이다. 화폐 위조를 심각한 범죄로 간주하는 태도는 리디아 왕이나 미국 대통령이나 같다.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의 등장은 수천년간 유지된 법정화폐의 권위와 지위를 심각하게 흔들고 있다. 가상화폐는 국가 권력의 개입 없이 민간 개발자가 발행하고 유통시킨다는 점에서 법정화폐와 다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화폐라는 말에 실물 또는 실체가 있는 교환·지급·유통수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1년 개정된 금융정보법에는 ‘가상자산’이라는 명칭이 채택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 불법행위 피해 규모는 1조192억원이었다. 전년도(3조1282억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가상자산의 하루 평균 거래 규모가 4분의 1로 줄어든 걸 감안하면 오히려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가상자산 범죄는 사기나 자금세탁 등 금융범죄 유형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엔 서울 강남 주택가 40대 여성 납치살인으로 이어졌다. 가상자산 투자자가 7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가상자산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