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尹정부, 갈등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입력 2023-04-06 04:03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당정협의 강화를 지시하고 대통령실과 당 정책위원회 대화 창구도 정해줬다. 노동개혁이 ‘주 69시간’ 암초에 걸려 국정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꺼내든 궁여지책이다. 고용노동부가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서두르다 역풍을 맞았다고 보고 당에 정책 조율 책임을 분담시킨 셈이다. 여론에 민감하고 현장 의견을 취합할 수 있는 당이 총선을 앞두고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윤정부의 약점이 보완될까 의문이다. 오히려 3대 개혁이 길을 잃고 개혁 동력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당의 정책 역량도 문제이거니와 선거를 코앞에 둔 정당이 3대 개혁이나 저출산 대책과 같은 중장기 구조개혁 과제에 무슨 관심이나 있겠나 싶다. 3자녀 부모에 대한 병역 면제와 상속세 감면 같은 반짝 아이디어를 정부에 들이밀어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사례로 보거나, 한국노총 지도부와 당 간의 소통 단절 사태를 감안할 때 당정협의 강화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총선 표만 좇다보면 핵심 개혁과제들은 총선 후로 미뤄지거나 캐비닛에 처박힐 게 뻔하다. 당장 노동개혁만 하더라도 개혁은 간데없고 고용부는 ‘노동개혁정책관’을 신설하며 조직만 키우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여당이 총선에서 할 말이 없게 된다.

정부는 하루빨리 지난 1년의 개혁 프로세스를 복기하고 개혁 거버넌스의 리셋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복지와 교육개혁은 지지부진하고 노동개혁마저 좌초 위기에 몰린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윤정부의 취약한 갈등관리 능력이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개혁은 기득권 재편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책의 정당성보다 갈등관리가 성패를 좌우한다. 어느 정권이나 갈등관리에 특별한 능력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갈등 지점을 인지하고 관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윤정부의 경우엔 대체로 투쟁심이 약하고 갈등 집단과 씨름해보지 않은 테크노크라트 중심으로 참모진이 짜이다 보니 과도하게 대통령에 의존하거나 당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인다.

개혁 갈등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세 가지다. 돌파하거나 타협하거나 피하는 것 중의 하나다. 돌파와 타협의 선택은 정책 성격과 정치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피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지만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표적 사례가 문재인 대통령의 연금개혁 포기다. 덜 내고 더 받는 연금제도를 짜보라는 지시는 갈등에 맞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에게 늘 사탕만을 쥐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지지자들에게도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법치주의 개혁은 갈등 집단과 일전불사를 각오한 선택이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돋보이는 이유는 돌파 전략을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다.

고용부는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 근로시간 개혁이 좌초한 이유는 타협이 필요할 때 돌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 노사관계는 타협할 성격이 아니지만 근로시간 유연화는 시간을 갖고 폭넓은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의 관심사항이고 정치적 조건으로 보더라도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었음에도 돌파 전략에 편승해 정신없이 따라가다 개혁 전선 전반을 혼란에 빠트리게 됐다. 지금의 혼란을 홍보 강화나 정책 조율 체계 정비만으로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와 여론을 수렴하겠다며 MZ노조를 찾아다니고 대규모 의견 조사를 해보겠지만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며 정부 체면만 깎일 것이다.

노동개혁은 돌파와 타협의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법치는 돌파, 노동시장 개혁은 타협으로 가야 한다. 기획재정부의 2023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근로시간 개혁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20여일 뒤 시간이 없다며 정부 독자 추진 방침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3월 입법예고와 동시에 대대적 홍보에 나섰지만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고 개혁 반대세력은 결집했다. 정부는 순식간에 개혁 주도권을 내주고 쫓아다니는 처지가 됐다. 이 와중에도 경사노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근로시간이나 임금과 같이 복잡한 갈등 이슈를 다루기 위해 설치한 대통령자문기구인데도 노동개혁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갈등과 개혁을 피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해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라는 점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