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22) 자식들 중 하나는 사역자로, 또 하나는 나라를 위해…

입력 2023-04-07 03:07
장남 원희종(가운데) 목사의 인도로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장남은 처음엔 서울에서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겼다. 그러다 2009년 서울 송파구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이후 7년 정도 목회하다 제주에 내려와 제주하영교회를 개척했다. 자체 건물이 없이 세를 얻어 목회하고 있지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는 아들이 세운 교회에 출석하고 나는 아직 중문교회를 섬긴다.

둘째는 현재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국회의원 3선을 거치고 제주 도지사로 일하다 지금 장관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딸들의 이름은 ‘진 선 미 신’을 넣은 진희 선희 미희 신희이다. 큰딸은 결혼해 서울에서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한다. 둘째 딸은 제주에 살면서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고 있다. 셋째와 넷째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래도 모든 자녀가 믿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늘 감사한다.

아이들이 자랄 때에는 환경적으로 교육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공부만큼은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가운데 자녀들 모두 대학까지 공부를 시킬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사업상 육지에 갔다 올 때마다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샀는데, 과자나 장난감보다는 만화책이나 교양서적 등을 사다 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한글을 깨우치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공부에도 다들 소질이 있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인간성이 좋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나의 교육철학이었기 때문에 비뚤어지거나 잘못된 생활 태도에 대해선 방관하지 않았다. 때로는 매를 들어 혼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자율성에 맡겼다. 공부하는 데에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신앙에 대한 것만은 철저히 가르치려고 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엔 가정예배를 드렸다. 예배시간에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도 돌아가면서 하도록 했다. 교회 예배 참석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했다. 신앙교육은 철저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훈도 누가복음 2장 14절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정했다.

1970년대 중후반 아마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로 기억한다. 이때는 사업에 실패해 과수원으로 들어와 생활했던 시절이다. 집에는 전기도 없었다. 호롱불과 촛불 밑에서 아이들이 자랐다. 당시 대부분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 갔다 오면 농사일을 도왔다.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키웠다.

나는 공부를 많이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평소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늦게라도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노회에서 운영하는 고등성경학교에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반대해 진학을 포기했다. 마음속에는 늘 목회자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래서 자식 열매 중 하나는 사역자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작정했다. 또 하나는 나라를 위해 바치겠다고 서원했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