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앞으로도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앞세워 간호법과 방송법 등 쟁점법안 입법을 강행할 경우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건의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거부권 정국’이 빚어지자 차라리 ‘대일 저자세 외교 논란 정국’보다 더 낫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국민의힘은 4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일제히 엄호하고 나섰다. 김기현 대표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민주당이 밀어붙이려는 양곡관리법은 궁극적으로 농민을 더욱 어렵게 할 ‘농가파탄법’”이라며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6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되돌아봐야 한다”며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억지 논리로 ‘내로남불 DNA’를 입증할 때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친윤(친윤석열) 핵심 의원은 “민주당의 의회독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거부권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대통령의 거부권은 이런 상황에 맞서라고 부여된 합법적인 권한”이라며 “국민 뜻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라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슈 전환에 대한 기대감도 엿보인다. 한 수도권 의원은 “‘반일 정서’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한·일 정상회담 결과와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평가를 두고 싸우는 것보다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따지는 편이 더 속 편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민주당 강행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공식이 굳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얽히고설킨 현안들을 풀어나갈 능력을 상실했다”며 “여야가 핵심 지지층을 묶어놔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총선까지 이런 극단적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현수 구자창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