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들고 행복은 함께하면 두 배가 된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크다고 했다. 제일농원의 경영 원칙 첫 번째는 수확한 귤의 20%는 복지시설이나 교회 선교 후원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정했다. 정성을 들여 생산한 귤을 교인들과 나누어 먹기도 하고 제주에 여행 왔다가 중문교회에 예배드리러 온 분들에게 선물로 귤을 나눠준다. 틈틈이 복지시설이나 목사님들에게도 귤을 보내곤 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진 게 없어 드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드리면 된다.
중문교회는 우리 집안 믿음의 고향이자 내 젊은 시절이 오롯이 담긴 교회이다. 나의 사랑하는 육남매 자녀가 자란 곳이기도 하다. 나는 믿음의 후배들에게 ‘중문교회를 변함없이 사랑한 신앙의 선배’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한다. 영원토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말이다. 나아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한반도가 통일되는 그날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뤄지지 않으면 천국에 가서도 쉬지 않고 기도할 작정이다.
살아오면서 고마운 사람이 있다. 돌아보면 은혜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믿음 생활을 하고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몸이 건강해지자 광복을 맞이하고 4·3사건을 지내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그런 중에 이웃에 있는 동갑내기인 김춘년과 결혼했다. 그때가 21살이었다.
이웃에 있는 어르신이 중매를 서주셨다. 처가는 바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다. 그러나 교회를 나가면서 신앙으로 가정을 꾸려 나갔다. 아내도 처음에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 원래 믿지 않는 가정이었다. 결혼 이후에도 처음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내가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사업을 할 때도 크게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도와주었다.
연속되는 사업 실패에도 크게 탓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해 권사 직분을 받고 지금까지 함께 신앙 동지로 신앙 1세대가 됐다. 생각하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함께 잘 지내 온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2남 4녀를 두고 있다. 큰아들 희종이는 24살 때 낳았다. 둘째 희룡이와는 6살 차이가 난다. 위로 아들 형제이고 밑으로는 모두 딸이다. 당시 웬만한 가정은 자녀들이 6~8명이 되곤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장사하는 시기라 늘 교회에서 지냈다. 아이들도 교회 가는 것을 좋아했다. 때로는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곤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이들을 놓고 새벽기도회를 갔는데 큰 아이가 잠에서 깨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혼자 교회를 찾아온 적도 있었다. 큰아들은 서원대로 목사가 됐다. 자식들은 6남매이지만 서로 싸우지 않고 우애가 돈독한 믿음의 형제로 자랐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