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중 목사의 선교적 삶] 죽음을 준비하는 삶

입력 2023-04-05 03:05

이번 주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이다. 지난달 30일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서울의 한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교단 총회 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현지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이다. 목사님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언제 거두어 가실지 모르니 항상 그날을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너무 안타깝고 슬펐지만 이 일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유명한 라틴어 문구를 생각했다. 이 말은 로마 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성대한 개선 행진을 할 때, 장군 바로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계속 말하게 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로마 시대를 살면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이다. 바울은 늘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바울은 날마다 실제로 죽음과 동행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항상 죽음의 위협이 있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곧 죽어가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모든 사람은 늙어가고 마침내 죽는다.(히 9:27)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런 종말의식을 가지고 매일 살아간다면 우리 삶에 무엇이 정말 소중한 것인지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오늘 이 순간 이대로 죽어도 되는지, 부활의 확실한 소망이 있기에 언제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아멘, 할렐루야” 하며 고백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며 살아가는 선교적 삶의 첫 번째 모습이다.

그다음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우리 육신의 자아와 정욕을 죽이며 산다는 고백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날마다 죽이며 사는 삶, 그래서 우리 옛사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삶,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선교적 삶이다.

사실 우리의 옛사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사는 삶은 말처럼 쉽지 않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육신의 정욕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이었기에 정욕과 탐심은 끊임없이 그로 하여금 갈등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9, 24)고 탄식했던 것이다.

바울의 이 고백은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했던 고백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의 고백이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고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것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한 번으로는 안 된다.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선교적 삶이다.

(주안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