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게임 산업계에 들이닥친 칼바람은 자못 차가웠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신작 성과와 기존 출시작의 하향 안정화가 겹쳐 악영향이 배가됐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게임사들은 ‘반토막이 선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경제 침체 장기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게임사들이 앞으로 넘어야 할 보릿고개도 길고, 험준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게임사들은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재(災)를 딛고 일어설 새 성장동력 찾기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 엔진을 찾기 위한 게임사의 노력은 주주총회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올해 주주총회장에선 ‘반등’ ‘기회’ 등의 표현이 유독 많이 나왔다. 사업 계획에는 비장한 각오가 스며 있었다.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키워드는 ‘판호’다. 중국은 지난해 말부터 해외 게임 서비스 허가증인 ‘외자 판호’ 발급을 재개했다. 중국 시장은 게임 산업계에서 최대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 그간 숱한 게임사들이 중국 시장의 성공을 바탕으로 실적상 퀀텀 점프에 성공했다. 판호를 받은 넥슨, 넷마블의 주추총회장에서는 이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박용현 넥슨게임즈 대표는 지난달 24일 주주총회에서 판호를 받은 게임 ‘블루 아카이브’에 대해 “중국 퍼블리셔인 요스타와 출시 스케줄을 협의하고 있고, 가능한 한 빠르게 출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블루 아카이브는 한국과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서브컬쳐 게임이다. 넥슨게임즈는 사전예약 이벤트를 여는 등 대륙 연착륙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지난달 29일 “다수의 판호를 발급 받으면서 중국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매출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넷마블은 최근 석달 여 만에 무려 5종의 게임 판호를 받아 관련 기대가 가장 높은 게임사로 꼽힌다. 권 대표는 “여러 개의 기대 신작들의 성공과 중국 진출을 통해 실적 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GPT 신드롬’에 발맞춰 사업 속도를 내는 게임사도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달 29일 주주총회장에서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 산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AI 연구개발 센터를 보유 중이다. 김 대표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업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게임 산업에서는 변화 속도가 훨씬 크다”며 “10년 넘게 AI를 준비해왔고 챗GPT와 비슷한 AI를 학습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AI기술을 게임 개발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프로젝트M’을 통해 AI 기술, 비주얼 기술의 핵심 집약체인 디지털 휴먼을 선보였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얼마 전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에서 김 대표의 모습을 AI로 구현한 디지털 휴먼을 공개하며 이목을 끌었다.
‘메타버스’에 꾸준히 투자하는 게임사도 있다. 컴투스는 게임과 블록체인을 결합하는 P20(Play to Own) 모델과 ‘컴투버스’로 일컫는 메타버스 사업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했다. 이주환 컴투스 대표는 지난달 29일 “블록체인 기반의 P2O 모델 안착으로 웹(Web)3.0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메타버스 플랫폼 컴투버스가 서비스를 본격화해 컴투스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블록체인 사업은) 1년 단위로 보면 안 된다. 올해부터 점차 수익이 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게임사 본연의 업무인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곳도 있다. 주주총회에서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는 그간 출시가 지연됐던 ‘붉은사막’을 언급하며 “올해 하반기 중 개발 완료를 목표로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펄어비스는 국내 게임사 중 유일하게 자체 엔진을 사용하는 곳이다.
상장 후 두 번째 주주총회를 맞이한 크래프톤의 김창한 대표는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재무적, 조직적 정비를 통해 조직의 역량을 탄탄하게 만들고, 게임 개발이라는 본업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퍼블리싱 권한을 가져오는 세컨드 파티 퍼블리싱을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솔 인턴기자 이다니엘 기자 s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