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을 주도한 이모(35)씨는 피해자의 가상화폐 회사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검거된 3인조 이외에 범행에 가담한 또 다른 공범도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의 윗선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투자 실패가 살인 청부로 이어졌는지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 이씨가 코인업계 관계자로부터 돈을 전달받고 범행을 계획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3일 “피해자 A씨 측 가상화폐 관련 회사를 통해 코인 투자를 해 손실을 봤다”는 취지의 이씨 진술을 확보하고 범행 동기를 추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이씨와 공범 황모(36)씨, 연모(30)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과 이씨 주변인 등에 따르면 그는 2020년 말쯤 A씨가 홍보하던 가상화폐에 9000만원을 투자했다가 800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 이씨는 40대 여성 B씨를 시세조종 설계자로 추정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폭력을 행사해 입건되기도 했다. B씨도 최근 A씨와의 채무 관계로 다른 사람들을 모아 소송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를 출국 금지한 뒤 소재를 확인하고 있다.
이씨는 투자 손실을 언급하며 A씨에게 계속 접촉을 시도해왔다고 한다. A씨는 손실 보전 차원에서 200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씨는 A씨에게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요구해 A씨가 일하는 가상화폐 사무소에서 2021년 6~9월 3개월간 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6월부터는 A씨 소개로 서울 강남의 한 법률사무소 비공식 사무장으로 일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이씨가 주도적으로 모의한 납치·살해 청부 사건으로 본다. 다만 경찰은 이씨의 범행에 영향을 미친 윗선이 있다는 진술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씨는 범행을 계획하며 대학 동창 황씨에게 두 차례 모두 700만원을 전달했다. 황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돈이 이씨가 코인업계 관계자로부터 받은 착수금 4000만원에서 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시신 유기 장소에는 동행하지 않았지만, 황씨 등 공범이 범행 후 대전 대청댐 인근으로 내려가기 전 경기도 용인 부근에서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때 이씨가 가상화폐 송금이 가능한 A씨 휴대전화를 가져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 집에서는 주사기도 다수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 차량에서 발견된 주사기와 같은 종류인지 살펴보고 있다. 황씨와 연씨는 범행도구를 이씨에게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검거 당시 서울 강남 논현동의 한 성형외과 빌딩 옥상에서 이 병원에 근무 중인 배우자와 대화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범행을 공모했다가 중간에 이탈한 20대 C씨도 살인예비 혐의로 입건했다. C씨는 배달대행을 하다가 알게 된 황씨로부터 “범행 이후 탈취한 금전으로 승용차를 사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한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