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입법 두고… 한은·금융위, 미묘한 입장차

입력 2023-04-04 04:09

가상화폐 관련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의견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가상화폐 정의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법안에 명시할지를 놓고서다. 일각에서는 CBDC 관리·감독 권한을 둘러싼 신경전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열고 가상화폐 관련 법안 18건을 심사했다. 가상화폐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후 22개월 만이다. 3일 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법안에 ‘CBDC를 가상화폐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넣을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있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CBDC 및 그와 관련된 서비스를 가상화폐 정의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는데, 이에 대해 금융위가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CBDC란 실물 화폐를 대체·보완해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말한다. 한은도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다.

금융위는 관련 문구를 넣을 경우 특정금융정보법에서 정의된 용어와 차이가 생겨 불필요한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우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CBDC가 가상화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명확하게 넣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한은은 명시적으로 ‘제외’ 문구를 넣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자적 증표’라는 법률상 용어가 포괄적이기 때문에 가상화폐 개념에 CBDC가 포함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미리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자는 취지”라며 “유럽연합(EU)의 암호화폐 규제안(MiCA) 등 해외사례도 참고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장면을 놓고 ‘CBDC나 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양 기관의 관할권 다툼의 예고편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은은 가치안정형 암호자산 감독·감시에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금융위는 한은이 가상화폐사업자로부터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법안에 넣는 것도 반대한다. 한 정무위원은 “금융위가 암호자산업을 금융위 테두리 안에만 두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