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버밍엄시립대학 연구진이 2014년 발표한 논문 ‘영국의 킬러들’은 청부살인에 대한 최초의 학술적 탐구였다. 1974년부터 2013년까지 영국에서 벌어진 청부살인 27건을 분석했는데, “영화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주목을 끌었다. 전문 암살조직이 치밀하게 증거를 은폐하는 범행으로 묘사되던 것과 달리, 현실의 청부살인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산책로나 쇼핑몰처럼 목격자가 없을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곤 했다. 대가는 27건 평균 2500만원(최고 1억6000만원)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동기도 사업 분쟁이나 치정이 대다수일 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논문은 킬러를 네 부류로 나누었다. ①살인이 처음인 ‘초보자’ ②살인이 직업이라기엔 미숙한 ‘아마추어’ ③나름의 경력을 가진 ‘직업 살인범’ ④법의학 추적을 따돌릴 만큼 능숙한 ‘마스터’.
한국에서도 잊을 만하면 청부살인 사건이 터지곤 했다. 2002년 영남제분 회장 부인이 사위의 불륜 상대라고 근거 없이 의심하던 여대생을 청부살해했다. 1억7000만원에 동원한 ‘킬러’는 자기 운전기사인 조카와 그를 통해 섭외한 사채업자였다. 2014년 서울 강서구 건물주 피살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추궁 끝에 드러난 살인 청부인은 범인의 10년 지기이자 피해자와 금전관계가 얽힌 서울시의원이었고, 살인의 대가는 7000만원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청부살인은 이 둘일 텐데, 아무리 봐도 직업 살인범이나 마스터급은 아니었다. 이런 한국 청부살인의 명맥을 잇는 사건이 10년 만에 터졌다. 강남 주택가에서 벌어진 납치살해극이 가상화폐를 둘러싼 청부살인인 것 같다고 한다. 이번에도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것보다”라고 말하는 넷플릭스 영화 속 ‘길복순’ 같은 전문성은 보이지 않았다. 영국의 킬러 기준에 비춰 보면 ①이나 ②에 해당할 만큼 어설펐는데, 아직 영화 같은 세상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세상이 점점 영화처럼 돼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 해야 할지, 헷갈리면서 왠지 불안해지는 사건이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