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종교음악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수난곡(Matthaus-Passion)’은 연주시간만 3시간이 넘는다. ‘작심’하지 않으면 웬만해선 듣기 어렵다. 그럼에도 부활주일을 앞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의 수난과 고통을 그린 마태수난곡은 꼭 들어볼 만한 곡이다.
서울모테트합창단 박치용(60) 지휘자를 종려주일을 앞둔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합창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서울모테트는 창단 35주년을 맞아 마스터피스 첫 번째 시리즈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민간 프로합창단인 서울모테트는 1989년 창단 이래 꾸준하게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 26~27장을 가사로 삼아 예수 최후의 날을 78곡으로 묘사했다.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독창, 합창, 관현악이 모두 등장하지만 무대 연출이나 연기는 하지 않는다. 합창 비중은 오페라보다 크고 줄거리를 설명하는 해설자 ‘복음사가’도 등장한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많은 인물도 나온다.
서울모테트의 공연은 두 개의 오케스트라, 어린이 합창단 등 세 개의 합창단, 솔리스트 6명 등 연주자만 150여명이다.
박 지휘자는 창단 때부터 서울모테트를 이끌면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지휘자로 섬기고 있다. 그는 “30년 넘게 지휘하면서 ‘음악은 무엇인가’부터 ‘하나님이 음악을 만드신 목적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었다”면서 “기독문화를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음악의 본질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찾은 답은 교회 안에서 음악은 단순히 여흥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세계를 가르치고 선포하고 설득하는 도구가 바로 찬송이며 음악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설교 직전의 성가대 찬양을 ‘설교 음악’이라 말한 것도 이 때문이죠.”
마태수난곡이 길거나 독일어 가사라는 이유만으로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박 지휘자는 “각자 갖고 있는 감성과 감수성으로 만나도 좋다. 78곡 중 하나라도 좋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대신 자신의 관심사와 필요에 따라 공부하고 가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마태수난곡을 듣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색다른 감상법도 알려줬다. 악보 속 숨겨진 코드인 ‘워드페인팅(word painting)’을 찾는 것이다. 워드페인팅은 노래의 가사나 문자 의미를 음표 하나하나에 그림 그리듯 반영하는 음악 기법이다. 마태수난곡에서 십자가가 가사에 나오면 음표의 모양도 십자가다. 예수가 고난당하고 묻힌 무덤을 이야기할 때 악보의 음표는 산소의 봉분처럼 봉긋하다.
“하나님의 말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사랑과 역사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을 통해 더 깊이 새길 수 있습니다. 늘 읽어오던 고난과 수난에 대한 묵상을 놀라운 차원으로 승화한 걸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