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서울시장의 속도전

입력 2023-04-04 04:02

16년 전인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변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발표했다. 한강변에 권역별로 문화·레저·운동을 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여가를 즐기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한강 지천까지 자전거도로가 놓였고 나들목이 만들어져 곳곳에서 시민들의 접근이 가능해졌다. 반포대교 남쪽에는 꽃을 형상화한 세빛섬이 만들어졌다. 노들섬에는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기로 했고, 인천 앞바다~김포 아라뱃길을 서울까지 끌어올려 여의도에 서울항을 만드는 서해뱃길 사업도 추진됐다. 물론 몇몇 사업은 사업성 등을 놓고 비판이 있었고 실제 일부는 좌초됐지만, 이때 정비된 한강공원은 시민들이 멀리 가지 않고도 즐겨찾는 여가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오 시장이 얼마 전 한강르네상스 2.0 버전인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이번에도 그 중심은 한강이다. 그런데 사업이 50개가 넘는다. 한강변에 수상 산책로를 만들고, 여의도공원엔 제2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한다. 노들섬을 노들예술섬으로 탈바꿈시키고 잠실·이촌에도 마리나를 만든다. 한강변 도시계획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포함시켰다. 아파트 높이 제한을 완화하고, 한강변 대규모 도시계획시설은 복합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여기에 랜드마크 건립도 빠질 수 없다. 한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마포구 하늘공원엔 고리 모양의 초대형 대관람차 ‘서울링’을 만든다. 서울링 높이는 63빌딩보다 높다고 한다. 사업비는 4000억원가량이다. 한강엔 강남북을 잇는 곤돌라를 설치한다. 서울시는 곤돌라의 지주 높이를 80m로 구상 중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세부계획 없이 막연한 청사진만 불쑥 꺼내놓았다. 성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 시장은 이들 사업을 민간사업자로부터 투자를 받아 하겠다고 했다. 사업성, 수익성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업자와 서울시민이 ‘윈윈’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다. 사회적 합의와 시민 공감대도 얻고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과도 협의해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규모 사업은 어느 정도 공감을 얻어야 하는데, 이벤트식으로 사업들을 한꺼번에 꺼내놓고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느낌이다.

이들 사업의 상당수는 3~4년 내인 2026년 또는 2027년에 완성된다. 2027년은 대선이 있는 해다. 대규모 사업은 인허가, 설계, 투자 유치 등 많은 절차를 거친다. 수익성과 안전성 등도 확보돼야 한다. 필연적으로 환경 문제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이렇게 많은 절차와 과제를 남겨놓고 50개가 넘는 사업을 패키지로 발표했다.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그가 서울시장으로서의 실적에 목말라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배경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런데 오 시장은 얼마 전 “사실 이것도 성에 차지 않는 속도”라고 했다.

오 시장은 33·34대 서울시장 재임 당시의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는 듯하다. 특히 자신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많은 사업이 후임 시장에 의해 줄줄이 백지화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세빛섬이다. 이 때문인지 오 시장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전담할 기구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임기 뒤에도 사업들이 무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오 시장은 4선 시장답게 서울시정에 대해선 자신감이 넘친다. 업무 장악력도 탁월하다. 시 공무원들도, 시민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번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그런 자신감이 조급함과 맞물린 결과물이 아니길 바란다. 구상이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여러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속도가 능사는 아니다. 치밀하고 꼼꼼한 이행 플랜이 우선돼야 한다.

남혁상 사회2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