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상생을 위한 연금개혁

입력 2023-04-04 04:03

이번에는 연금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서는 이대로 간다면 2055년에 기금이 고갈된다고 전망했다. 기금이 소진돼 보험료를 걷어 연금 지급액을 충당하려면 2078년에는 소득의 35%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재정계산위는 출산율, 경제성장률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기금 소진 연도를 계산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에서는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어떻게 조정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로 경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를 따지듯 다양한 조합이 논의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연금제도가 스스로 살아남는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국민연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국민연금제도의 문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보험료로 내는 돈의 총합보다 연금으로 받는 돈의 총합이 2배를 넘는다. 이 구조에서는 연금을 본격 지급할 시점이 되면 기금이 점차 소진되고 지급불능에 빠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문제가 단순한 만큼 해법도 단순하다. 보험료에 부합하는 수준의 연금을 받는 것이다. 아직 투표권이 없거나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지 않는 이상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다. 경제학, 정치학, 복지학의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수입과 지출이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국민연금제도가 국민 노후소득보장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연금의 재정건전성만 따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높은 노인빈곤율을 감안하면 소득대체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가치와 의도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 붕괴돼 사회에 막중한 부담이 될 제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제도 중에서 정책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다. 불가능한 제도는 좋은 제도가 될 수 없다.

혹자는 국가가 국민연금을 운영하므로 기금이 고갈되면 국가가 지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기금 고갈에 대비해야 한다. 미래세대에게 세금을 걷어 연금 지급액을 충당한다면 현세대 노후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전가하는 셈이므로 미래세대의 보험료율을 극단적으로 올리는 것과 다름없다. 의미 있는 방안은 현세대가 기금 안정을 위한 세금을 내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보험료를 더 낼 용의가 없는데 같은 목적의 세금을 낼 용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차라리 보험료율 인상이 단순하고 합리적이다.

혹자는 미래세대는 현세대보다 풍족하게 살 것이므로 보험료를 더 부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계산한 보험료가 소득의 35%다. 2025년부터 35%의 절반 정도인 17.9%로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70년 후인 2093년에도 연금 지출액 1년치만큼의 기금이 남는다고 한다. 미래세대보다 현세대의 부담이 현실적인 이유다. 혹자는 세대 갈등을 걱정한다. 현세대가 혜택을 받기 위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상황에서 세대 갈등이 없기를 바랄 수 없다. 점점 악화하는 국제 분쟁과 갈등, 기후 온난화로 차오르는 해수면, 어느 국가도 겪어보지 못한 급속한 고령화 등 한국의 미래세대는 현세대가 남긴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현세대가 대비하지 못한 노후까지 미래세대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고 불합리하다.

전 국민의 노후를 국가가 다 책임질 수는 없다. 국민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국가가 보조하는 구조가 효과적이다. 과도한 이득을 바라지 않고 각자 기여한 만큼 받는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면 여러 세대가 상생하며 지속가능한 연금제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