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항암치료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자

입력 2023-04-04 04:02

매년 8만명 이상이 암으로 사망하는데 그중 상당수는 항암치료 대상이다. 항암치료하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날마다 드는 고민은 환자들이 체감하는 항암치료 효과가 암 종류에 따라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항암치료 방법은 없을까?

종양내과 의사들은 백혈병 치료제로 작년에 보험급여 승인된 카티(CAR-T) 면역치료제를 돌파구로 생각한다. 10년 전 기존 치료는 모두 실패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던 첫 투약 소녀가 완치됐고, 그때 투약된 카티 세포는 아직도 환자 몸에 남아 치료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니 3억6000만원의 비용을 감내할 수가 있다. 악성림프종과 다발성골수종에서도 카티는 표준치료의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들 혈액암과 달리 우리가 흔히 암이라 통칭하는 고형암에서는 카티 개발이 쉽지 않아 해외에서도 승인된 사례는 없고, 임상시험 중 사망한 환자도 적지 않았다. 살아있는 약제인 카티 세포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같이 공격했기 때문이다. 백혈병에서는 CD19라는 좋은 표적분자가 있어 이런 문제가 거의 해결됐으나 대부분의 고형암에선 암세포에서만 존재하는 표적 항원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위암에선 CLDN18.2란 단백질이 비교적 안전하고 효과적인 표적으로 밝혀져 이를 타깃하는 카티의 고무적인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같이 어떤 표적을 타깃하느냐가 고형암 카티 개발에 중요하므로, 여기에 국가적 노력을 결집한다면 선진국에 뒤처진 기술 격차를 만회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카티 표적을 찾는데는 암환자에게서 얻어지는 조직샘플에 고효율 분석화학 기술을 접목하는 추세인데, 다행히 기술 접목에 대해선 국내 수준과 자원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렇게 찾은 신규 항원들은 카티 외 다른 계열의 혁신적 항체 의약품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자산으로 삼을 수도 있다.

관련 원천기술 개발도 관건이다. 암특이적 항원의 대부분은 세포 안에 존재하는데 이 같은 세포 내 항원에 대해서도 항체를 도출해 암특이적인 카티를 개발하는 연구가 해외에서 보고되고 있다. 여러 암항원을 동시에 인지하는 경우에만 작동하게 해 카티 활성을 유지하는 합성생물학 기법도 적용되고 있다. 우리도 이런 다학제 융복합 접근으로 플랫폼 기술을 자체 개발해야 한다. 이 같은 혁신적인 연구개발은 아무래도 실패 가능성이 높아 국가에서 연구의 장을 어느 정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중 여러 암항원을 인지해 작동하게 하는 카티 임상개발의 경우 어떤 환자가 해당 항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신속히 선별해낼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특히 크다. 고효율 분석화학법으로 임상검체에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많은 수의 단백질·지질을 동시에 정량할 수 있게 됐으므로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국가 지원 산·학·연·병 협력으로 갖춰 가자는 것이다. 현재는 치료 전 조직검사 검체들이 대부분 파라핀 처리되고 있지만 이를 신선 동결할 수 있으면 여기에 최첨단 분석화학법을 접목해 제반 항암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연구개발이 가능하다. 카티뿐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모든 표적·면역치료제의 임상시험 피험자가 보다 효율적으로 등재될 수 있는 임상시험 인프라로서도 유용할 것이다.

원천기술 개발과 데이터 공유를 통한 항암치료 개선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에 부합되는 점을 생각하면 이달 하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의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 국격을 높이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내 항암제 연간 매출 1조9000억원 중 80% 정도를 다국적 제약사 매출이 차지하는 엄중한 현실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김학균 국립암센터 항암신약신치료개발사업단 부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