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척은 모든 게 준비된 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황량한 광야 한복판에 놓인 채 ‘맨땅에 헤딩’ 하듯 시작하는 것에 가깝다.
라이트하우스 포항교회가 딱 그랬다. 포항은 교회 개척 운동인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의 다섯 번째 개척지였다. 시작은 이렇다. 개척을 위해 서울에서 사역해온 박노아 목사를 라이트하우스 해운대로 오게 했다. 그렇게 함께 사역하다 포항 개척을 준비했다. 박 목사는 성경공부를 이끌어 가는 탁월한 은사가 있다. 서울신대 시절 내 강의를 들었던 것을 인연으로 15년 넘게 교제해왔다.
포항에서 예배 처소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카페를 돌며 주일에 두 시간 정도 빌려줄 수 있는지 확인했다. 주인들은 처음엔 반색하다가도 “임대료 낼 형편은 아닙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10여개 카페를 돌았지만 공간을 빌려주겠다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낭패였다. 장소는 걱정 말고 기도만 하라고 박 목사에게 일러두었는데 걱정이 컸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잘 알고 지내던 한동대 교수님이었다. “목사님, 포항에도 교회를 세우셔요? 예배 처소는요?” 그 대화를 시작으로 장소 마련에 물꼬가 텄다. 교수님이 출석하던 교회가 한 건물 6층에 카페를 개업하려 했는데 진척이 되지 않아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라이트하우스 포항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기도다. 개척 준비엔 한계가 있다. 라이트하우스는 초반에 공간을 임대하지 않기 때문에 부대시설을 준비할 게 별로 없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 기다림은 설렘과 두려움의 반복이다. 기도로 준비하며 SNS를 통해 정한 날짜와 예배 처소를 공개한다. 문구도 단출하다. ‘0월 0일 오후 0시. 00에 라이트하우스가 세워집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오시면 개척 멤버.’
교회는 그날 오시는 분들과 시작된다. 그날 오신 분 중 한 분은 50대 여성이었다. 한 번도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기독교TV 프로그램을 통해 라이트하우스를 알게 됐고 포항에서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다. 라이트하우스 포항은 이 한 분을 위해서라도 개척돼야 했다고 믿는다. 이제 2년 된 라이트하우스 포항은 이 성도와 함께 아름답게 성장해 새로운 예배 처소에서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다.
많은 재정을 개척 초기에 투자하지 말라. 공간을 조금 더 예쁘고 멋지게 꾸민다고 사람들이 더 오지 않는다. 기다림, 그리고 실망의 연속이 개척 초기를 지배하지만 그 시간이 서서히 목회자를 만들어간다. 부교역자 시절 외쳤던 ‘한 영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뼛속에서 외치고 또 외치는 한 영혼이 개척교회 목사에게 존재한다.
맨땅에 교회를 개척한 뒤 사람도 없고 재정도 없을 때는 무엇보다 우울하고 외롭다. 뭘 해야 할지 잘 모른다. 심방할 사람도, 예배에 올 사람도 없는데 계속 설교 준비를 하자니 힘들다. 그때 기도원에 가지 말라. 기도굴에 들어가 하염없이 기도하는 대신 먼저 교회를 개척한 선배를 찾아라. 그리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으라. 수다도 떨고 걱정도 나누고 실컷 떠들다 들어오라.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조바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털어놓으라.
라이트하우스 무브먼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목회자 공동체다. 그 공동체가 가족이 되고 함께함이 든든하면 교회는 살아난다. 개척의 길은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만남을 통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선배 목사를 찾아라. 개척 경험이 있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언제든 국밥 한 그릇 사줄 수 있는 그분이 필요하다.
‘분립 개척’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분립도 초반에는 힘을 받지만 개척에 대한 야성 없이 덤비는 분립은 성공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쌓아가고 버티며 얻게 되는 리더십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외로움과 싸우며 절대 조바심을 키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