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시작된 이른바 ‘뱅크데믹’(은행+팬데믹)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들이 전반적으로 대출 규모를 줄이면서 기업과 가계 등 경제 주체가 자금난에 빠지고, 신용경색과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3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은행권 대출이 1% 감소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각각 0.1% 포인트, 0.3% 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유로존 은행들은 지난 2월 기업 대출을 전월 대비 32억3000만 달러 줄였다.
은행 대출은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수요 위축, 은행의 시가총액 감소, 자본 재조정 등에 따라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또 아직 닥치지 않은 손실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 확충 과정에서도 신규 대출은 지연된다. 국제금융센터는 시가총액이 1% 줄어들 경우 미국과 유럽의 대출 증가율이 각각 0.08% 포인트 감소하고, 은행 자본이 1% 감소할 때 미국과 유럽 대출 증가율이 각각 0.25% 포인트, 0.31% 포인트씩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중소기업·가계에 대한 대출이 위축되면 전반적으로 경기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역은행들이 미국 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40%”라며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위험이 증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은행의 대출 긴축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와 유사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근 은행의 시가총액 감소와 자본재조정 등의 영향을 반영하면 미국과 유럽 은행의 대출은 각각 3~5% 포인트, 1~1.2%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올해 미국과 유럽의 GDP 성장률은 각각 0.3~0.5% 포인트, 0.3~0.4% 포인트 감소할 전망이다.
은행권 위기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은행권 스트레스가 경제를 둔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매우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며 “은행과 대출자들의 불안으로 자본시장이 계속 닫혀있게 되면 경제에 더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 데 긴도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비즈니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은행권 위기로 유럽에서 신용 기준이 더 강화될 수 있다”며 “이는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이 더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