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정치화’ 염증… 산업부 관료들 줄줄이 대기업行

입력 2023-04-03 04:07
사진=연합뉴스

국가 산업 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과장급 공무원들이 속속 민간기업으로 이직하고 있다. 최근 2년간 대기업으로 이직한 산업부 과장급 공무원 수만 8명이다. 산업부 공무원의 민간기업행이 다른 부처에 비해 유독 두드러진 이유로는 검찰의 탈원전 수사가 꼽힌다. 정권 기조에 맞춰 적극적으로 일할수록 나중에 수사나 감찰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 이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산업부 A과장은 조만간 현대차로 이직할 계획이다. A과장은 이직 후 정부와 소통하는 대관 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직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A과장이 마음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직에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과장까지 이직하면 최근 2년간 산업부를 떠나 대기업으로 이직한 과장급 공무원은 모두 9명이다. 산업부 본부 내 과장·팀장급 보직이 88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장·팀장급 이직률은 10.2%에 달한다.

에너지와 연관성이 있는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사례가 많았다. 산업부 혁신행정담당관을 지낸 송용식 과장은 한화에너지 전무로, 배성준 전 신남방통상과장은 SK에코플랜트 상무로 영입됐다.

산업부를 떠나 대기업으로 옮긴 공무원들의 공통점은 산업부에서 소위 ‘에이스’로 불렸다는 점이다. 업무처리 능력이나 조직관리 측면에서 인정받던 실력자들이 공직을 내던진 셈이다. 과거와 달리 에너지 분야 기업으로만 옮기지 않았다는 점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분야다. 권혁우 전 석유산업과장은 삼성전자로, 박훈 전 에너지기술과장은 SK하이닉스로 이직했다.

다른 부처에서도 과장급 이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욱 전 금융위원회 행정인사과장은 메리츠화재 전무로 직함을 바꿨다. 오종훈 전 환경부 생활폐기물과장과 조석훈 전 환경부 물환경정책과장은 현재 SK에코플랜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최근에는 고용노동부 출신에 대한 기업 수요도 늘고 있다. 중대재해법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전문성 있는 공무원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다만 산업부 공무원의 이탈 행렬에는 다른 부처와 다른 특징이 있다. 월성원전 수사 이후 ‘탈산업부’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담당했던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이런 기류가 강해졌다는 얘기다. 검찰의 월성원전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복권 시도조차 못 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과거에 무죄 선고를 받고 복권돼 1급까지 오른 전례도 있지만 원전 수사와 관련해선 복권 절차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산업부 출신 한 이직자는 “정책 기조에 맞춰 열심히 일해도 남은 건 상흔뿐”이라며 “이런 실망감이 이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산업부 출신 고위 관계자는 “힘내서 일할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이직 움직임을 끊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종=신준섭 박세환 기자, 김혜원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