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이 대관(對官) 업무 적임자로 ‘관료’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풍부한 실무 경험과 폭넓은 인맥이 자리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정책의 정치화’ 현상이 짙어지면서 정무적 감각을 겸비한 관료 출신이 몸값을 올리고 있다. 즉시 현업에 투입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치를 갖췄다는 점도 매력 요소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인 A씨는 2일 “정책을 정치 도구화하는 분위기가 점점 심해지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면서 “기업에서 관료 출신에 대한 인력 수요가 아직 남아 있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관료 출신 인재 영입의 필요성이 부상한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국우선주의 기조 아래 기습적으로 꺼내든 IRA 앞에서 한국 기업들은 사전 정보 입수, 사후 대관 대응력에서 큰 차이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와 유기적이고 신속한 협업이 필수였는데, 그 중간다리 역할을 퇴직 공무원이 하곤 했다. 자동차·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 세부지침 협상 과정의 경우 기업 현안과 애로사항을 관료 출신인 기업의 대관 담당자가 파악해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에서 이를 감안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거나 압박했다. 그렇게 하면서 최악의 결과는 피했다”고 전했다.
특히 ‘신(新)보호무역주의’ 바람이 더 거세지고 있어 국제통상 사안을 빠르게 파악하고, 미리 대응하는 건 기업의 경쟁력으로 직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활발하다. 기업과 정부를 잇는 민관 합동 연결망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료 출신 기업인에 거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이는 인재 수혈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 조직에서 민간기업으로 옮겨가는 공직자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중앙정부 부처 장관을 지낸 B씨는 “입법부의 막대한 권한과 통제 아래 정책을 정치 도구화하는 행태가 도를 넘어서면서 공직사회 무기력이 극에 달한 상태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았다’는 자조가 팽배한 관가에서 성과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보장받는 민간으로의 엑소더스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인 C씨는 “기업으로 이직 자리를 주선해 달라는 후배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에는 중앙정부 부처 과장급이 이직하면 연봉을 몇 배 더 받고 대기업 임원으로 직행했는데, 요즘은 아래 직급에서도 민간기업으로 가는 길을 기웃거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혜원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