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기·가스 요금, 계속 누르다간 더 크게 터진다

입력 2023-04-03 04:01
연합뉴스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통한 원가 회수율이 70%에 불과하다. 발전사에서 100원에 전기를 사다 공급하면 소비자에게 70원밖에 받지 못한다. 30%의 적자를 채권 발행으로 메우고 있다. 작년에만 37조원이 넘는 채권을 발행했다. 한전채 발행한도가 꽉 차서 법을 개정해 높여놨는데, 올해 적자를 5조원 이내로 막지 못하면 높인 한도마저 다 차게 된다.

한국가스공사는 가스요금을 통한 원가 회수율이 62%로 더 열악하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워낙 올라서 지난해 38%나 요금 인상을 했는데도 그렇다. 해외에서 가스를 사오는 가격보다 국내 공급 가격이 턱없이 낮아 작년 말에 이미 8조원 넘는 미수금이 쌓였고, 이대로라면 올해 말에는 13조원에 이를 거라고 한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정부는 올해 전기요금을 ㎾h당 51.6원(분기당 13원씩), 가스요금을 MJ(메가줄)당 10.4원(작년에 올린 5.4원의 약 2배) 올려야 한전과 가스공사가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너무 오랫동안 인상을 회피하며 에너지 요금을 눌러온 부작용이 세계적 에너지난과 맞물려 불거졌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코너에 몰렸다. 이를 잘 알면서도 2분기 요금 조정을 유보한 지난주 당정협의회 결정은 실망스럽다.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올해 초 ‘난방비 폭탄’ 같은 상황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여당의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윤석열정부의 자기 부정에 가깝다. 정치적 이유로 꼭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지난 정부와 다를 바 없고, 인기가 없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던 정책 기조를 스스로 허무는 꼴이다.

2분기는 요금 인상이 그나마 수월한 시기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3분기, 겨울로 접어드는 4분기로 갈수록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고, 내년 총선도 가까워진다. 지금 에너지 요금 정책의 원칙을 굳게 세워놓지 않으면 정치적 블랙홀인 총선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에너지 요금은 시간을 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미루고 미루다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말해주듯, 오히려 부담만 더 키울 뿐이다.

두 공기업의 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위해서도 에너지 요금 현실화를 서둘러야 한다. 세계화의 종언, 기후위기의 악화와 함께 값싼 에너지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현재 우리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는 심각한 무역적자도 에너지 수입 비용의 급등이 큰 몫을 차지한다.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친환경 미래 경제로 전환하려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고효율 구조로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할 때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좌고우면할 여유가 많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유보한 2분기 요금 조정을 속히 재검토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