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의 시대
서울역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가는 택시를 탔다. 운전자는 내비게이션 덕분에 검색만 하면 된다. 어느 길로 가냐고 물으면 “내비를 따라가면 된다”고 응답한다. 길을 몰라도 애써 지리를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에서 길을 물어도 마찬가지다. 모두 앱으로 검색해 알려준다. 생각이 필요 없는 시절이다. 인공지능(AI)이 만든 검색엔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AI의 습격은 “사색의 시대는 가라. 검색만 하면 된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AI는 ‘사색하지만 느린 인간’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AI는 사색을 제외한 나머지 일에서만 투입됐다. 그간의 AI는 연산이나 속도가 필요한 곳에서, 또 위험한 고공에서 로봇의 모습으로 청소를 수행하면서 존재가 빛났다. 물론 양돈농장에서 24시간 카메라에 부착돼 돼지가 땀을 흘리는지 혹시 압사되는지를 감지하는 일도 한다. 우리는 이를 ‘좁은 AI(Narrow AI)’로 불렀다.
그런데 이제 생성 AI 챗GPT의 등장으로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 ‘범용 AI(General AI)’가 등장할 거라고 야단법석이다. 근래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챗GPT는 수천만개의 자료를 학습해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의사고시도 통과하고, 미네소타대학 로스쿨에서는 변호사 시험도 통과했다”는 증언이 더해지면서 신화를 만들고 있다. 챗GPT가 등장하면서 사색보다 기계에 의존하는 경향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기계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2045년에는 모든 인간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레이 커즈와일의 도발적 예언에도 힘이 실릴 것 같다.
콘텐츠 창작에 능하다는 챗GPT에 헤르만 헤세 소설 ‘지와 사랑’의 주인공에 대해 물어봤다. “주인공은 신사적이고 젊은 왕자인 하이네이히 왕자와 그의 사랑하는 소녀인 지오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실제 작품과 달리 엉뚱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왜 동일한 챗GPT가 멋진 스토리텔링 능력을 보이다가 엉터리 이야기를 술술 내놓는 것일까? 오류가 있는 데이터를 조합한 결과로 나타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미몽) 현상이다. 그 이유는 데이터 학습 시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어진 단어와 문장 속에서 확률이 높은 것으로 스토리를 자동 구성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다. 특정 확률 게임에서 스토리텔링이 되면 자동 거짓말 기계가 된다. 그만큼 위험성도 크다는 얘기다.
‘검색의 시대’에서 ‘챗족의 시대’로?
챗GPT가 주는 편리함과 빠름이 좋아서 사색을 멈추고 챗GPT에 의존하는 시대가 가속화되면? AI만 잘 활용하면 의사가 되고 변호사도 되기 때문에 정작 의학과 법학 그 자체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에세이, 창작, 코딩, 비즈니스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가장 효과적으로 묻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독서에 열중할 시간에 “요약본 나와라!”고 명령할 것이다.
결국 ‘사색’보다는 ‘챗봇’에 의존할 것이다. 인간의 고유성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사색하는 인간)는 사라지고 검색하는 인간 호모 서치엔스(Homo Searchiens)가, 생성 AI 시대에는 ‘호모 챗족(Homo Chatters)’이 거리를 누비게 될 것이다. 운전을 위해 지리를 익힐 필요가 없듯이 사고력과 창의력 연마는 점점 귀찮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인간은 직관에 의존하는 ‘빠른 생각’을 인지적 깊이를 더하는 ‘느린 생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간의 장점은 사색과 창조에 있다. AI는 빨리 연산을 수행하지만 사색하는 기능은 없다. 인간과 AI 관계에서 빠른 직관적 사고와 느리지만 정교한 인식의 만남은 좋은 궁합이 된다. 이 만남을 통해 AI는 인간의 의사결정을 돕고 노동력을 대신하는 멋진 도구가 되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컴퓨팅 사고나 AI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or AI Thinking)는 단순히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이나 AI 알고리즘을 잘 짜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창조 과정에서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처리하고 해석하는 정신적 기술, 즉 마인드 스토밍을 의미한다. 컴퓨터 이전에 창조적 사고력 배양이 진짜 컴퓨팅 사고이듯이, 인간의 뇌 구조를 반영한 AI 알고리즘으로 최적의 문제 해결 전략을 짜는 방식이 AI 사고가 된다.
챗GPT는 아직 부족하지만 AI의 중요한 성과물이다. 하지만 AI의 승리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창조를 위해 노력해온 인간의 승리다. 기존 게이머들이 정적이고 순차적인 언어모델에 의존했다면, 챗GPT는 동시다발적으로 맥락에 이르도록 구성했다. 즉 장미 넝쿨을 보고 철조망을 고안하는 것과 같이 연상과 맥락 파악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놀라운 것이다. 앞뒤 단어를 순차적으로 기억하는 원리에서 벗어나 집중(attention)하고 병렬(parallelization)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상법으로 말하자면 수직적 사고(vertical thinking)에서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로 전환한 셈이다. 게임의 룰을 바꾼 것이다.
구글 AI 연구자로 일하면서 오늘날 챗GPT의 기초를 닦은 아시시 바스와니는 ‘챗GPT가 인간을 모방해 공감하는 능력’과 ‘인간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있는 인간-기계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그는 기존 알고리즘을 정답처럼 따라간 게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필요한 기술을 융합한 것이다. AI 분야의 4대 천황으로 불리는 얀 르쿤은 좋은 AI가 되려면 인간의 뇌 구조 자체를 모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이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컴퓨터나 AI가 아니라 컴퓨팅 사고와 AI 사고다. 챗GPT의 등장은 아직은 시작점에 있지만 기존 게임의 규칙을 뒤집으려는 사색의 힘과 도전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현덕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