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상위권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의대 선호도는 압도적이다. 안정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에도 그럴까. AI와 로봇이 일자리 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킨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국민일보는 지난달 29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AI연구원에서 장병탁 원장을 만나 ‘AI 시대와 일자리 미래’를 물었다. 30년 넘게 AI를 연구한 그는 “챗GPT 때문에 못 살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장 원장은 첫 질문(의사라는 직업의 지속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의사 일에 전문적 성격은 있지만, 단순 반복 업무가 많이 포함돼 있다고 진단했다. AI 개입이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준화한다고 내다봤다. 다만 완전히 대체한다는 관측에 거리를 뒀다. “의사가 하는 고된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한다면 인간 의사의 임금 수준은 지금보다 낮아지는 게 공정한 거겠죠. AI가 업무 부담을 덜어주면 의사들이 환자 마음을 다스리는 정서적 역할을 더 강화하게 될 겁니다.”
또한 장 원장은 AI 시대엔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는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이미 인문학 전공자가 공학도보다 잘할 수 있는 새로운 AI 일자리가 생겼다. 바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다. 질 높은 질문을 던져서 AI를 훈련하는 직업이다.
-AI 시대, 어떤 직업부터 대체되나.
“데이터화한 업무를 하는 ‘중간 일자리’부터 사라진다. 어떤 직무에서 고도의 의사결정을 하는 최고급 인력과 신체 노동을 하는 인력을 제외한 일자리가 중간 일자리다. 일자리의 최상단과 하단은 기술적으로 AI가 완전 대체하기 어렵다.
일반 사무직이 하는 문서 작업은 대체하기 쉽다. 이미 워드나 파워포인트로 문서 작업하는 건 챗GPT가 기막히게 한다. 대표적 중간 일자리다. 그런데 출력된 문서를 물리적으로 옮기는 아래 단계 업무는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문서 작성 업무를 지시하고 조율하는 위 단계 업무 역시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다.”
옥스퍼드대 마틴스쿨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2013년에 “향후 10~20년 사이 자동화로 사라질 확률이 높은 일자리가 47%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체 확률 70%가 넘는 고위험군 직종은 건설노동자, 행정서비스관리자, 트럭·버스·택시 운전사, 호텔짐꾼, 경비원, 기술서류작성자, 여행안내자, 회계사, 변호사 보조원, 급여관리자, 전화통신판매원 등이었다.
-프레이·오스본 보고서의 ‘대체 고위험군 일자리’에 동의하나.
“건설노동자를 AI가 대체하는 건 쉽지 않다. 로봇이 더 발전해야 채산성이 맞는데, 갈 길이 멀다. 여행가이드도 현장에서 직접 안내하는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 반면 행정서비스관리자, 기술서류작성자, 회계사, 변호사 보조원, 급여관리자 등은 진짜 위험하다. 전형적 중간 일자리다. 일반 회계사무원은 바로 일자리 대체 위협을 받을 것이다. 다만 상속·감세 관련해 판단하거나 전략을 세우는 공인회계사는 대체하기 쉽지 않다. 데이터화나 자료화가 어려워서다.”
-운전 관련 직업은 쉽게 대체되나.
“그렇지 않다. 10년 전에 예측했을 때보다 운전기사를 완전자율주행 기술로 대체하는 건 어려워지고 있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모으면서) ‘요만큼’의 기술이 모자라기 때문인데 이 요만큼이 어렵다. AI가 라이다 센서로 물체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건 잘한다. 그런데 의도 파악을 못 한다. 센서에 잡힌 어린아이나 고양이가 차 앞으로 뛰어들지 여부는 수많은 변수가 물고 물리는 문맥 속에 있다. 이걸 파악하려면 ‘감’이라고 하는 전체 상황 파악능력이 있어야 한다. 집에서 부산의 어떤 호텔까지 이동한다고 가정하자.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기술은 거의 완성됐다. 그런데 집에서 고속도로까지 가는 동네 길은 AI에 너무 어렵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부산의 호텔로 가는 도로도 온갖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설명을 이어가던 장 원장은 갑자기 “이게 뭐죠?”라고 물었다. “휴대전화”라고 답했다. 그는 웃으면서 AI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다. 시각이 없는 AI는 “이게”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장 원장은 또 물었다. “우리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나요, 싸우고 있나요.” 이것도 AI엔 어려운 질문이다. 시각을 탑재한다면 마주 보고 얘기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다만 그 행위의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건 매우 어렵다. 인간에게 쉬운 게 AI에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 쉽다. 바로 ‘모라벡의 역설’이다.
-‘일자리 멸종’ 가능성은. AI 관련 일자리로 이동의 어려움은 없나.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길 거라고 본다. 새로운 직무, 직업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대표적 사례다. 또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일반인이 AI를 쓰기 쉬워진다. 챗GPT가 큰 반향을 일으킨 건 누구나 자기 언어로 AI와 대화할 수 있어서다. AI를 잘 활용하면 일자리 전환도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AI 시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지시·조율 역할도 기계가 하는 건 아닐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기술적 이유가 있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려면 체화된 인지, 체화된 지능이 돼야 한다. 시각적 경험, 촉각적 경험 등에 기초해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AI는 현실세계가 작동하는 맥락과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책상이라는 단어를 보면 온갖 경험과 지식을 떠올린다. 두드려본 기억, 부딪쳐서 아파본 기억, 공부했던 기억 등이 녹아 있다. 그런데 GPT는 책상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문서를 모아서 책상에 관해 떠드는 식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단절된 AI가 인간이 하는 고도의 결정까지 대체하기는 어렵다.”
-물리적 세계와 연결된 AI 나와도 대량실업 사태는 없을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AI가 일자리를 앗아가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해서 채울 수 없는 업무를 먼저 대신할 것으로 본다. 어떤 이유로든 채워지지 않는 일자리는 기계가 대신할 수밖에 없다. 정책적으로 일자리를 앗아갈 위험이 큰 AI 기술보다는 사람들이 꺼리는 일자리에 활용할 수 있는 AI 기술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