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와 당직으로 일 폭탄에 파묻혀 고된 업무가 매일 이어지던 펠로우(전임의) 시절, 남자 동기 한 명이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대상포진에 걸렸었다. 처음엔 감기몸살인 줄 알았는데, 안면통이 동반된 얼굴 포진(물집)이 나타난 그는 결국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시 통증클리닉 교수가 ‘성상 신경절 차단술’을 시행해 2주 정도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상포진은 어렸을 적 우리 몸에 들어온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 안에 숨어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되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경 다발을 따라 띠 모양의 포진을 만들고 신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발병 초기(72시간 이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는 것이 합병증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바이러스 복제를 막지 못해 피부 병변이 커지고 심할수록 완치 후 통증이 남을 가능성도 증가한다.
대상포진은 대부분 가벼운 통증과 포진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먼저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통증클리닉을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바이러스가 신경 다발을 파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발병 초기 한 달 이내에 통증 차단 주사를 맞으면 신경 염증을 개선하고 통증 경감에 도움 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대상포진의 조기 발견과 함께 통증 관점에서의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노인의 경우 대상포진 치료가 끝난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길게는 수 개월에서 수 년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으며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교감신경을 차단하는 성상 신경절 차단술 등 부위에 맞는 치료를 시행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대상포진 발병 후 수 개월이 지나면 약물치료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다. 치료 기간이 길수록 대상포진 후 통증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대상포진 발견 즉시 피부과 치료와 함께 통증 조절을 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방 주사 또한 합병증을 줄이는 큰 효과가 있으니 꼭 맞길 권장한다.
김선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