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모란공원

입력 2023-04-03 04:10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위상은 독특하다. 1966년 조성된 국내 첫 사설 공동묘지이지만 민주화 운동가들이 묻힌 터로 더 유명하다. 유사한 민주묘역인 4·19, 5·18 묘지는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것인데 반해, 모란공원은 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형성됐고 지금도 사회 운동가들의 유해 안장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경기도 이천에 국립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 문을 열었지만 모란공원에서의 이장은 지지부진했다. 모란공원의 상징성과 진보세력의 애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모란공원에 안장된 첫 민주화운동 인사는 1969년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사형당한 경제학자 권재혁씨였다. 이듬해 11월 전태일 열사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모란공원은 민주열사의 묘역으로 서서히 부상했다. 위상이 커지자 권위주의 정권의 훼방도 심해졌다. 86년 분신자살한 근로자 박영진씨의 장지가 모란공원으로 정해졌다가 정권이 이를 막았다. 민주화 운동가들의 묘소가 한곳에 모이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다. 한 달여의 노동계 투쟁 끝에 안장에 성공했고 이후 노동·학생운동, 의문사, 산업 재해 등의 희생자들을 위한 민족민주 열사 묘역이 본격 조성됐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씨, 통일운동가 문익환씨, 정치인 김근태 노회찬 의원, 2018년 사망한 비정규직 김용균씨 등 각계 민주인사 150여명의 묘가 이곳에 자리잡았다.

민주화 성지로 알려진 모란공원이 요새 시끄럽다. 지난 1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가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기 때문이다. 2020년 성추행 의혹으로 피소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이 모란공원에 안치되자 일부 진보 및 여성계의 비판이 거세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이 여전한데 박 전 시장이 민주열사 타이틀을 얻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른 새벽에 이장된 점도 떳떳치 못함을 반증한 것이라는 평이다. 박 전 시장의 묘는 전태일 열사 묘 뒤편에 놓였다. 이곳을 찾을 참배객들만 여러모로 곤혹스럽게 됐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