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명불허전’이다. 1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긴 기다림을 보상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잘 짜인 스토리, 화려한 무대, 중독성 강한 노래로 유명한 작품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한국 배우들의 뛰어난 기량에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일간의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익숙한 작품이다.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팬텀(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귀족 청년 라울의 러브스토리를 그렸다. 이 작품에서 1t 무게의 대형 샹들리에가 천정에서 무대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장면과 팬텀이 크리스틴을 배에 태워 안개 자욱한 지하 호수로 노를 젓는 장면은 무대미학의 극치로 꼽힌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영국 초연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억4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에서는 2001년 초연 당시 7개월 동안 관객 24만명을 동원하며 뮤지컬 산업화의 시작점이 됐으며, 지금까지 2차례 한국어 공연과 3차례의 내한 공연을 통해 누적 관객 15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은 조승우 전동석 김주택 최재림 등 4명이 팬텀으로 캐스팅돼 개막 전부터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무대를 오가는 전천후 배우이자 뮤지컬계에서 손꼽히는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조승우가 7년 만에 새로운 배역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약하다 JTBC 성악 예능 ‘팬텀싱어’에 출연한 김주택이 처음 뮤지컬에 출연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일 드림씨어터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2차례 무대에 올랐다. 낮 공연은 조승우 손지수 송원근 그리고 저녁 공연은 김주택 송은혜 송원근이 각각 주역인 팬텀, 크리스틴, 라울 역을 맡았다. 극중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팬텀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승우는 팬텀 역으로 캐스팅된 4명 가운데 유일하게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체로 팬텀은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역할이지만 조승우는 호소력 짙은 창법과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드러냈다. 이날 목 컨디션이 100%는 아닌 듯 보였지만 조승우는 베테랑답게 노련한 연기를 펼쳤다. 조승우의 대사에는 눈물이 묻어났는데, 흉측한 모습 때문에 평생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팬텀의 고통과 슬픔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크리스틴, 사랑해”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장면은 조승우 연기의 하이라이트였다.
한편 김주택은 테너에 가까운 고음을 소화하면서도 묵직하게 노래하는 바리톤으로 오페라계에서 각광받았다. 2017년 ‘팬텀싱어’ 시즌2에서 미라클라스로 준우승한 뒤 방송과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 스펙트럼을 넓힌 그는 처음 도전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폭발적인 성량과 압도적인 에너지로 크리스틴에 대한 팬텀의 집착과 사람들을 죽이는 광기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부산 공연은 6월 18일까지. 7월에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부산=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