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극장도 치킨도 이젠 안녕

입력 2023-04-03 04:06

일본 국민과자로 불리는 우마이봉은 출시 43년 만인 지난해 가격을 인상했다. 개당 10엔짜리가 2엔 올라 12엔이 됐다. 일본이 놀란 건 20%나 오른 가격이 아니었다. 가격이 올랐다는 거 자체가 충격이었다. 반면 한국의 국민과자라고 할 수 있는 새우깡은 출시 이후 가격이 30배 올랐다. 1971년 출시할 때 한 봉지에 50원이었는데, 지난해 9월 가격 인상으로 1500원이 됐다. 50여년간 몇 년에 한 번씩 계속 가격이 오른 결과다.

둘의 차이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 일본은 가격을 올리면 안 되는 시장이다. 일본은 1980년대 고성장 시대 이후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저성장 시대를 지나왔다. 성장이 정체하면서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가격이 오르면 구매를 포기하는 상황이 됐다. 일본 기업들은 원자재가 상승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생겨도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은 가격을 올리는 게 가능했다. 한국은 70년대부터 고성장 시대를 지나왔다. 80년대는 경제성장률이 두 자릿수에 달했고, 최근까지도 3%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도 꾸준히 올라갔기 때문에 가격 인상을 시장이 흡수할 수 있었다. 가격 인상 후 처음 몇 달은 수요가 감소하지만 이내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기업들이 소비자 저항에도 가격을 계속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최근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심상치 않다. 치킨업계 1위 교촌치킨은 3일부터 한 마리, 부분육 주요 메뉴를 3000원 인상한다. 인기 메뉴 허니콤보는 2만원에서 2만3000원이 된다. 배달비(3000~5000원)까지 더하면 3만원에 가까운 가격이다. “치킨을 사랑하지만, 이 돈을 내고는 못 먹겠다”는 반응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덮고 있다. 예전처럼 그러다 말겠지 하기엔 가격 인상을 소비자들이 더는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비싼 배달비에 배달음식 이용도 줄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의 2월 월간활성이용자(MAU)는 2922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586만명보다 18.5% 줄었다. 배달의민족이 작년 영업이익 4241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소비자들은 비싼 배달료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관도 점점 빈자리가 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영화관 관객 수는 지난 2일까지 2557만8176명이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도 지난해(1억1280만5094명)와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이 유력하다. 영화관람객은 2019년 2억2667만8777명을 기록하는 등 해마다 2억명 이상이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관람객이 5952만3967명과 6053만1087명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 영화관람료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4000원 인상됐다. 평일은 1만4000원, 주말은 1만5000원 수준이다. 과거에는 데이트나 주말 나들이에 영화관이 필수 코스였다면, 이제는 가격에 부담을 느껴 배제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6%로 예측했다. 수출은 6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13개월째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은 지출을 늘릴 여력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소비 침체→기업 투자 및 고용 축소→임금 정체로 인한 소비 둔화’의 악순환이 본격화할 수 있다. 일본 같은 장기 저물가 시대가 우리에게도 현실화할 수 있다. 다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반전의 계기가 절실하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