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방문할 때마다 아름다운 공간의 모습에 놀라고, 역사와 유물에 대한 관계자들의 깊은 애정과 존중에 하염없이 감탄하게 된다. 건물 정면에 들어서자마자 높은 계단 너머로 남산타워와 하늘을 곧장 마주할 수 있다. 이 특별한 건축 설계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복잡한 대도시 역시 아주 오래전 인류와 문명의 탄생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은유하고 있는 것 같다.
평일 오후라 한가했지만, 박물관의 전시들은 규모가 방대해 하루 안에 모두 관람하기는 어려웠다. 동행과 함께 3층부터 살펴 내려가기로 했다. 반가사유상과 백자 등은 이곳에 올 때마다 마주하는 유물이지만 매 순간 새롭게 아름다웠다. 이번 방문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메소포타미아관의 전시품 영상에 등장한 큐레이터의 설명이었는데, 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예술과 지식의 탄생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는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것은 메소포타미아나 다른 문명에서 발명됐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설명돼 있는 이미지나 관념에 익숙하다. 마음만 먹으면 접근할 수 있는 예술과 지식은 우리의 곁에 넘치게 있다. 대상을 구체화하고 관념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행위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발되고 발전돼 온 영역이라는 생각을 이전에는 하지 못했다. 문명 이전의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세계는 얼마나 흐릿한 것이었을까. 대상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은 인류 문명의 진화와 함께 이뤄졌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미래 사람들의 눈에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세계를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상상을 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고, 한없이 겸손해진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