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유아대상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저연령화 고액화하는 사교육 실태와 관련해 “광풍에 맞서 응전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 부서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영어유치원의 과도한 학습비 문제 등을 점검하는 한편 공 사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초등 영어교육 강화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는 “즐거움이어야 할 교육이 어느덧 고통이 돼 있다”며 “영어교육이 낳는 계층적 불평등에 대해 새로운 국가적 대책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30일 영어유치원 ‘사전 사교육’ 실태, 고액 학습비 실태 등을 연속보도해온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을 만나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그는 보도가 전한 영어유치원 실태를 통해 주입식 선행학습식 교육 경쟁이 과거보다 앞당겨졌음을 재확인했으며, 공교육 책임기관으로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치열한 교육 경쟁이 외국어고 자사고에서 국제학교로, 국제학교에서 이제 유치원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유아 영어 사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비싼 학습비가 불평등 박탈감 문제를 낳으며, 공교육이 일정 부분을 흡수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지적도 많았다. 조 교육감은 유아 영어 사교육 실태가 비정상적이지만 동시에 얼른 해결하긴 힘든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서기 때문에 대응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공교육이 사교육과 똑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 교육감은 TF가 학계 자문을 얻어 영어 공·사교육 격차 해소 방안부터 마련토록 주문했다. 그는 ‘브레인스토밍’ 수준인 현 단계에서는 아날로그식 방안과 ‘인공지능(AI) 기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아날로그식 방안은 현재 초등학교당 1명 꼴인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를 2명씩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인공지능 기반 방안은 영어교육을 제공할 ‘AI 교사’를 학습 콘텐츠 형태로 누구에게나 보급하는 아이디어다. 조 교육감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를 메울 만한 기술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영어유치원 실태에서 ‘학벌 자본’을 얻기 위한 교육경쟁 표출 양상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경쟁은 예전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그 방식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산업기술의 전환과 세계화 속에서 교육을 둘러싼 국경은 낮아졌고, 학부모들의 목표도 국내 대학 입시 성공을 넘어 ‘글로벌 수준의 상위 대학’ 합격까지 커졌다는 것이다. 조 교육감은 “영어가 우리 사회 엘리트의 최대 학력자본인 것은 사실”이라며 “무조건 규제의 칼날을 댈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조 교육감은 다만 유치원 이전 단계까지 번진 치열한 선행학습의 경쟁을 ‘비정상의 극치’라며 대안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 아이들의 교육은 즐거움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현재는 고통이 돼 역효과가 크다”며 “합리적 경쟁이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다”고 진단했다. 조 교육감은 “그동안 교육을 비정상화하는 학력주의에 맞서 왔다”며 “정답이 없는 길이지만, 진보 교육감으로서 ‘잉글리시 디바이드(영어 능력으로 인한 빈부 격차 발생)’에 계속 응전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훈 이경원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