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난방비 대란 당시 정부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도시가스요금 경감책을 발표했지만 개인정보 규제 탓에 본격적인 지원이 2개월가량 늦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난방비 폭탄에 분노한 여론 달래기에만 급급해 설익은 지원 방안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도시가스요금 감면이 에너지법에 따른 에너지 복지사업에 포함되는지를 질의했다. 배경은 이렇다. 지난 1월 말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동절기(12~3월) 한정으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 가구의 도시가스요금 할인 폭을 9000∼3만6000원에서 배가량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지난 2월 16일 장관 명의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도시가스요금 경감지침’을 개정해 고시했다. 지침은 대통령실 발표대로 취약계층의 가스요금 할인 폭을 배로 늘리고, 에너지바우처 수급자를 도시가스요금 혜택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가운데 에너지 취약계층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자 산업부가 2015년부터 지급하고 있는 에너지요금 쿠폰이다. 현재 약 118만 가구가 바우처를 지원받고 있다. 이들에게 바우처 지원액을 차감한 만큼 도시가스요금 혜택을 추가로 부여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었다. 정부에 따르면 차상위계층 가운데 에너지바우처 미수급자와 수급자는 동절기 매달 각각 14만8000원, 8만6000원의 도시가스요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에너지바우처 사업은 한국에너지공단이 주관하고 있다. 바우처 수급자 명단도 공단이 관리한다. 가스공사가 공단에 이 정보를 요청했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개보위는 가스공사 측에 가스요금 할인이 정부의 복지 시책으로 인정된다면 명단 공유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가스공사는 이를 수용해 산업부에 질의 절차를 밟았고, 산업부는 지난 16일 가스공사에 긍정적인 유권해석을 내놨다.
결국 대통령실 발표는 1월이었지만 산업부 고시는 2월, 에너지바우처 수급자 명단 공유는 3월에야 이뤄졌다. 이를 두고 과도한 규제로 정부가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내부 규제 절차를 따르는 동안 2개월이 지났고 겨울철도 거의 끝났다. 동절기 에너지바우처 사업마저 다음 달 30일 종료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오는 9월까지 도시가스요금 가운데 동절기 요금만큼을 차감하고, 부족할 경우 추가 환급 절차도 진행하겠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31일 올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을 동시에 발표한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9일 당정협의를 열어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다만 고물가 상황과 여론을 고려할 때 인상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