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 조율 보고누락부터… 외교라인 알력설까지 추측 난무

입력 2023-03-30 04:08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일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김 실장은 29일 전격 사퇴했다. 연합뉴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전격 교체된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부터 국가안보실 내부 알력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매우 중요한 외교 이벤트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명확한 설명 없이 외교안보 사령탑을 교체한 것이어서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 실장 사퇴 처리는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김 실장이 이날 오후 5시3분 대변인실 언론 공지를 통해 사의를 밝힌 뒤 5시55분 김은혜 홍보수석이 윤 대통령의 사의 수용과 후임자 내정 사실을 알렸다.

전날 대통령실은 ‘국가안보실장 교체가 검토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만류했는데 김 실장이 사의를 접지 않아 결국 사의를 수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 사퇴 배경으로는 미국 국빈방문 일정 조율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미국 측이 제안한 한류 팝스타 프로그램 관련 보고가 윤 대통령에게 적시에 보고되지 않으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길 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방미 기간에 K팝 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 프로그램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부부 동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상대국에 외교적으로 결례가 될 만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주미대사관에서 미국 측 요청을 담아 국빈 만찬 일정 관련 전보를 5차례나 보냈는데,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대응이 지체돼 행사가 무산될 뻔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김일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의 잇단 사퇴도 이와 관련한 문책성 인사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김 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알력설도 거론되고 있다. 방미 일정 관련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안보실 내 권력 갈등이 있고, 윤 대통령이 이를 인지하게 되면서 안보실장 교체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갑작스런 안보실장 교체로 윤 대통령의 4월 말 미국 국빈방문과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준비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안보실장 공백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 “신임 안보실장이 바로 인수인계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답했다. 후임으로 내정된 조태용 주미대사가 현재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상태이며, 그간 방미 준비에 깊게 관여했기 때문에 큰 공백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조 대사의 이동으로 방미 실무를 담당하는 주미대사 자리가 비게 됐다. 새 대사가 내정되더라도 미국 측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이 필요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질 배경에 대해 명백히 밝힐 것을 대통령실에 촉구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민은 대통령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줄줄이 쫓겨나고 있는 것인지, 또 누가 이들의 경질을 주도한 것인지 납득할 수 있게 해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외교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정현수 문동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