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좋은 청년 일자리 확보가 저출산 극복 열쇠

입력 2023-03-30 04:06

요즘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구직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벌어지는 ‘일자리 미스 매치’ 현상이다. 임금은 낮은데 업무 강도는 높다거나 사회적 인식이 떨어지는 등 청년층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자리만 수두룩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청년들의 고용 불안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저출산을 논할 수 없다. 질 좋은 청년 일자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저출산 극복의 열쇠라는 분석이다.

29일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취업자 수는 전월 대비 2만7000명 감소했다. 전월 대비 취업자 수는 지난해 11월 -1만1000명, 12월 -4만명에 이어 3개월 연속 감소세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0만명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재직 인원 5인 이상 기업이 적극적으로 구인하고 있는데도 채용하지 못한 사람 수를 나타내는 ‘미충원 인원’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4만9000명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10년간 미충원 인원은 연간 9만명 안팎을 오르내렸지만 코로나19가 한국 경제를 강타한 직후인 2021년 10만명을 넘어선 뒤 지난해에는 15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조사 대상을 재직 인원 1인 이상 기업으로 넓히면 미충원 인원은 18만5000명까지 불어난다. 미충원율은 15.4%에 이른다.

미충원 인원이 많은 업종은 제조업(설치·정비·생산직) 3만명, 운수창고업(운전·운송직) 2만7000명, 숙박음식업(음식서비스직) 1만2000명, 보건사회복지(보건·의료직) 9000명 순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구직자가 피하는 업종이다.

이런 ‘빈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저임금이다. 지난해 고용부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 ‘임금 수준 등 근로 조건의 불일치’가 전체 미충원 사유 중 28.1%를 차지해 1위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급여 수준에 대한 구직자 눈높이가 높아진 여파다. 현행 인력 양성 체계와 산업현장 수요 간 괴리도 이런 결과를 낳는 데 일조했다. 교육계에서는 이미 대졸 이상의 고급 인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단순 생산이나 유지·보수 등 저숙련 인력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내국인 미충원 인원 17만7000명을 직능 수준별로 조사한 결과 ‘경력 2년 미만·전문대 졸 이하’가 14만6000명으로 전체의 83%가량을 차지했다.

대졸 이상 고급 인력을 소화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3000달러에 육박(2022년 기준)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현재 단순 생산·유지·보수용 일자리로는 고급 교육을 받은 청년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 산업 구조 고도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은 주요국에 비해 뒤처진다. 산업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의 ICT·SW 분야 기술 수준은 미국의 83%에 불과하다. 기술 격차는 1.9년에 이른다. 유럽연합(90%·1.1년)과 중국(86%·1.6년), 일본(84%·1.6년)에 비해 0.3~0.8년 늦다.

문제는 기초기술 역량이 더 떨어진다는 점이다. ICT·SW 내 17대 세부 분야별 기술 수준과 격차를 보면 ‘대면적·초고속·초정밀 디스플레이 소재·공정·장비 기술’과 ‘인체 친화형 디스플레이 기술’ ‘지능형 실감 방송·미디어 서비스 기술’ 세 가지의 기초기술 단계만 ‘우수’일 뿐 나머지 14개는 모두 ‘보통’ 수준이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기술은 기초에서 응용, 개발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특성이 있다”면서 “기초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계도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20년 전국 대·중견기업 49곳과 중소기업 1296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응답한 곳은 전체의 31%에 그쳤다. 또 디지털 전환 단계를 0부터 4까지 총 5단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전체의 82%가 0~1단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0~1단계는 디지털 전환의 의미와 관련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환경 변화도 체감하지 못하는 걸음마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중소기업으로 한정해서 보면 디지털 전환을 아예 추진하지 않는 곳이 전체의 46%로 대·중견기업(25%)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실정이다.

재계의 디지털 전환을 도우려면 혁신 인력 양성 체계도 뒷받침돼야 한다.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머리글자를 딴 ‘STEM’ 교육과 디지털 문해력 강화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공·사교육에서는 학생들이 STEM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 뒤 구글 등 빅테크(대형 ICT 기업)와 협력해 디지털 전환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구축해 ‘디지털 마케팅과 전자상거래’ ‘데이터 분석’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등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온라인 학습 플랫폼에서 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구글과 연계된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현행 교육 체계가 디지털 전환 인력을 길러내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유치원 등 영유아 교육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초·중·고등학교 중등 교육은 교육청과 교육부, 대학교 등 고등 교육은 교육부로 분절돼 있는데 평생학습이 필수적인 STEM과 디지털 문해력 강화에는 알맞지 않다.

정지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인력수급분석센터장은 “생애 단계별로 목적을 설정하는 등 평생학습 기반의 인력 양성 체계가 필요하다”면서 “부처별로, 중앙·지역으로 분할돼 있는 현행 교육 체계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