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전재정 유지 위해서라도 재정 준칙 마련하라

입력 2023-03-29 04:03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재정준칙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중장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지 않도록 재정준칙을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에 맞춘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했다. 일종의 예산 가이드라인인 지침을 보면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4.8% 늘어난 699조2000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올해 예산 증가율(5.1%)보다 낮고 문재인정부 시절 평균치(8.5%)의 60% 수준에 그칠 정도로 바짝 허리띠를 조였다. 정부는 불투명한 보조금 등 재정 누수 요인을 틀어막되 국방·치안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에 예산을 중점 투입하기로 했다.

취지는 이해가 간다. 문재인정부 5년 동안 나랏빚은 400조원이나 불어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같은 기간 36%에서 약 50%로 뛰었다. 선진국들에 비해 부채 규모가 적다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대비를 위해서라도 재정건전성은 중요하다. 문제는 현실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세수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세수는 전년 동월 대비 6조8000억원이나 줄어 역대 최대 감소폭(1월 기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부동산 및 기업 실적 악화 때문인데 이 추세가 언제 반등할지 미지수다. 세수에 구멍이 나면 재정건전화도 요원해진다. 내년 총선도 복병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때마다 선심성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총선 승리에 명운을 건 정권이 재정 풀기의 유혹을 뿌리칠지 의문이다. 실제 하반기에 경기 부양 명분으로 대규모 추경을 편성할 것이란 전망이 파다한 상태다.

제도적 조치를 통해 정치 논리를 제어할 수밖에 없다. 재정 적자와 부채 수준을 일정 비율 이하로 억제하는 ‘재정 준칙’ 마련이 그것이다. 관련 법안이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됐음에도 진척이 더디다. 열쇠를 쥐고 있는 거대 야당이 적극 협조해야 한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처럼 최후의 보루였던 재정이 흔들리면 국가신인도가 추락해 경제위기의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