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에서 지난 25일 서울에 벚꽃이 피었다고 발표했다. 작년에 비해 열흘이나 빠르다. 기준은 종로구 송월동 기상관측소 앞 왕벚나무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핀 날. 꽃길만 걷고 싶다면 이 발표를 잘 해석해야 하는데, 벚꽃이 덜 피었다는 뜻이다. 실제 개화에서 만개까지 5일 정도 걸리니 서울 벚꽃은 이번 주 중후반 만개한다. 여의도 윤중로를 비롯한 강변 쪽은 더 빠르고, 남산순환로 같은 산자락은 5일 이상 더디다. 주말 내내 우리 동네 곳곳에서 상춘객들이 벚꽃이라 착각하며 줄지어 사진 찍던 꽃은 기실 살구꽃(杏花)이었다.
봄의 상징처럼 여기는 왕벚나무가 한반도에 심어진 건 일제강점기 이후일 뿐, 이전에는 살구나무가 대세였다. 장대하게 자라는 데다 까만 가지에 달린 압도적인 흰 꽃은 향기도 짙어 새와 벌도 좋아한다. 열매는 새콤하고 영양도 풍부하며, 씨앗(杏仁)은 한약재로 유명하고 기름을 짜 화장품에도 쓴다. 목질이 치밀해 목탁이나 다듬이 재료로도 높이 칠 정도니, 꽃이 좀 해사한 벚꽃과 비교해도 이점은 차고 넘친다. 북한에서는 광복 후 일제 잔재로 치부해 왕벚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살구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지금도 평양시 주체탑거리나 개선문거리는 살구나무 가로수 꽃길로 유명하다.
“借問酒家何處在(술집이 어디에 있느냐 물으니)/ 牧童遙指杏花村(목동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 한시 ‘청명(淸明)’은 살구꽃 철마다 떠오른다. 조선조부터 지난 세기 중반까지 막걸리집 주련에 위 시구를 걸거나 문 앞에 살구나무를 한두 그루 심곤 했단다. 여기에 “살구꽃이 필 때면 내 사랑 순이가 떠오른다”는 가수 나훈아의 ‘18세 순이’나 한국인의 영원한 18번 ‘고향의 봄’의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도. 만개한 꽃과 그 감성까지 더해져 주말 내내 충만했다. ‘매우 그럴듯한’ 인공지능 시대와는 대비된 ‘실재’하는 살구꽃의 향연이었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