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민연금 실평위원 두달 공석… 정부-노동계 또 충돌

입력 2023-03-28 04:04 수정 2023-03-28 04:04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실평위)의 근로자단체 추천 인사의 임명을 두달 째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확대 기조를 강화하고 있는 윤석열정부가 기금 투자와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국민연금 산하 여러 위원회 구성을 놓고 노동계와 계속해 충돌하는 모양새다.

2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실평위 근로자 위원 1명 자리가 2개월 넘게 공석으로 있는 상태다. 실평위는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기금 관리에 대한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는 기구다. 국민연금 고갈 문제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기금 수익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원회 역할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실평위는 보건복지부 제1차관을 위원장으로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경제·경영 분야 회계사·변호사 등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 추천 몫은 각각 3명, 3명, 6명이다. 하지만 이 중 근로자 단체 추천 몫 1명이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애초 근로자 단체는 이 자리에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를 추천했다. 정 교수는 직전에도 실평위원으로 활동하며 2022년 12월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하지만 최근 위원 재추천 과정에서 복지부는 정 교수 추천에 대해 거부 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교수가 2016년 12월부터 3연임을 했기 때문에 다른 인사를 추천해 달라는 취지다.

근로자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실평위원은 전문성이 중요한 만큼 법으로 ‘중임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시해뒀는데, 연임을 문제 삼는다는 건 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의 정용건 공동집행위원장은 “위원회의 전문성을 고려하면 새로운 위원 추천보다 연속성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최근 복지부의 결정은 노동계 인사를 배제하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추천 인사의 풀을 폭넓게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임 금지 규정이 없는 상황이어서 다른 인사를 추천해 달라는 복지부의 입장과 정 교수 추천 입장을 고수하는 근로자단체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당은 아예 실평위 위원의 연임을 ‘중임’에서 ‘두 차례만 연임’으로 바꾸는 국민연금법 개정안까지 지난 21일 발의한 상태다.

기금운용 장악력을 높이려는 정부와 반발하는 노동계의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 근로자단체가 원종현 수탁자책임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을 단수 추천하자 복지부가 “복수 추천하라”며 임명을 미루다 이달 10일에야 재선임을 결정했다. 또 근로자단체 몫의 기금운용위원을 맡은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위원 추천 방식에 항의하자 ‘품의 유지 위반’을 근거로 해촉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오는 29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고 윤 위원에 대한 해촉통보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