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착취도 인신매매” 개념 넓힌다

입력 2023-03-28 04:07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성 A씨는 최근 퇴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회사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근로를 강요했다. 앞으로 A씨처럼 자기 의사에 반하는 근로를 강요받는 것도 경우에 따라 인신매매가 될 수 있다. 정부가 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성매매·성착취를 강요당하는 것을 ‘인신매매’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신매매 개념을 단순히 ‘사람 매매’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 목적과 수단, 행위 요소를 결합해 종합 판단할 수 있도록 개념을 크게 넓힌 것이다.

정부는 27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제1차 인신매매등방지정책조정협의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1차 인신매매 등 방지 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인신매매방지법은 성매매와 성착취, 노동 착취, 장기 적출 등을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 등 수단을 써서 사람을 모집, 운송하는 행위 등을 ‘인신매매’로 정의한다. 그동안 인신매매를 납치나 감금 등 단편적 결과 중심으로 인식해온 것이 범죄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인신매매 피해자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 ‘피해자 식별지표’를 사용하기로 했다. 식별지표는 인신매매의 행위(모집·운송·은닉 등)와 수단(위력·위계 등)에 더해 피해자가 어떤 목적(성매매·성착취·노동착취 등)으로 착취당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점검표다. 예를 들어 기존 거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소지로 이동(행위)해 폭행과 협박에 의해(수단)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실(착취 목적)이 확인될 경우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호·지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아동이나 장애인의 경우에는 폭행 협박 등 구체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노동력이나 성적 착취를 하는 경우 인신매매가 된다.

여가부는 검사와 경찰 등에게 현장에서 식별지표를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관계부처는 식별지표 활용 실적을 매년 1월 31일까지 여가부에 제출해야 한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