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전화했더니 중국 콜센터가… 도청하고 전화 가로챈 보이스 피싱

입력 2023-03-23 04:06
국민일보DB

30대 A씨는 평소 보이스피싱 사기에 넘어가는 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수법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치밀했다. A씨가 이들에게 속아 결혼자금 1억8000만원을 날리는 데에는 사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당 조직은 A씨에게 그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며 계좌 보호를 위해 ‘폴-안티스파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위장한 악성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폴-안티스파이 앱은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이 2014년 8월~2021년 12월 대국민 서비스용으로 제작·배포한 불법 도청 탐지앱이다. 이 기간 238만회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사기 조직은 실제 폴-안티스파이 앱 외형과 초기 실행화면을 동일하게 구현해 A씨를 속였다.

악성 앱은 정보 탈취뿐 아니라 전화 가로채기 기능도 갖고 있었다.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수사기관에 전화를 걸면 바로 조직이 운영하는 콜센터로 연결되는 식이었다. A씨는 카카오톡으로 전송된 허위 압수수색영장을 보고 수사관을 사칭한 현금전달책에게 의심 없이 현금을 건넸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국은 2018년 10월~2019년 4월 이런 수법으로 피해자 166명에게 모두 61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정보통신망법 위반)로 중국인 콜센터 관리인 B씨(32)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2019년과 지난해 국내 콜센터 직원 2명이 차례로 검거된 이후 세번째다.

B씨 등은 타인의 휴대전화 938대에 악성 앱을 설치하도록 했다. 피해자들은 이들이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 등 공문서를 메신저를 통해 보내자 별다른 의심 없이 앱을 깔았다고 한다. B씨 등은 악성 앱을 통해 피해자들의 통화내용과 주변 상황도 실시간 도청했다. 범죄를 눈치챘던 한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하러 갔다가 이들로부터 “경찰서 간 것 다 들었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경찰은 중국에 머무는 총책이 악성 앱을 만든 것으로 보고 추적 중이다. 이번에 파악된 피해규모는 대만에 있는 악성 앱 정보수집 서버에서 확인된 것으로, 유사한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경찰은 본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