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산업이 깊은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건설, 자동차 등의 수요 산업들이 침체에 들어간 데다 과잉공급 우려까지 겹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하지만 돌파구가 보인다. 튀르키예의 지진피해 복구사업, 중국의 경기 회복이 반전 계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한국철강협회와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조강(쇳물)과 철강제품 생산량은 2014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를 기록했다. 조강 생산량은 543만t으로 지난해 1월보다 10% 감소했다. 철강제품 생산도 줄었다. 열연강판 생산량은 전년 대비 22%, 냉연강판 생산량은 20% 떨어졌다.
철강업계 부진은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흐름이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각각 6조107억원, 2조373억원에 그쳤다. 전년 대비 34.94%, 16.76%나 감소한 수치다. 전방산업 수요 부진, 철강 과잉공급 등으로 올해 철강산업의 전망도 밝지 않다.
그러나 부진의 터널 한쪽에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튀르키예 지진피해 복구사업은 철강 수출 회복에 발판이 될 수 있다. 튀르키예 정부와 현지 철강업계는 지난 2일 회의에서 재건사업에 약 500만t의 철강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튀르키예 지진 복구라는 특수 수요가 생겼다. 특히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이 개발한 내진용 철강제품이 빛을 볼 때가 된 것”이라고 내다봤다.
튀르키예의 철강 생산에 차질이 생긴 점도 기회다. 유럽철강협회(EUROFER)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한 철강제품 가운데 튀르키예산이 15.2%로 가장 많았다. 한국산은 10.2%로 2위다. 튀르키예 제철소의 정상 가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튀르키예 철강생산자협회 베이셀 야얀 사무총장은 “튀르키예 철강업체들은 수출보다 내수를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산 철강제품의 공백이 상당 기간 이어지고, 한국산 철강제품이 빈자리를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수요 개선 흐름도 변수로 떠오른다.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소비국이다. 중국 제조업 경기는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달에 52.6을 찍었다. 2012년 4월(53.3)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다. 중국의 부동산 부양책도 철강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에 주택 매수자 대출규제 완화, 건설업 금융지원 강화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다만 올해 양회에서 추가 부동산 부양책은 없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