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비로소 시간이 흘러가”

입력 2023-03-21 03:02

더 글로리, ‘영광’이라니 복수극의 제목으로는 생뚱맞다. 작가는 극중 인물의 입을 빌려 제목의 의도를 밝힌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그걸 찾아야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폭력의 순간 동은의 존엄성과 영광은 땅에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삶도 중단됐다. 복수가 되었든 화해가 되었든, 영광을 되찾아야 삶이 지속할 수 있다. 영광을 회복하는 순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삶이 이어진다. 자기와 친구를 위한 복수극을 끝낸 동은의 맨 마지막 대사다. “비로소 시간이 흘러가. 축하해, 너와 나의 열아홉 살을.”

작가는 의식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 드라마는 사람에 관한 성경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사람은 영광스러운 존재다. 진화의 산물이거나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되어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있다.(시 8:5)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때 영광이 더욱 빛난다. 만일 사람이 폭력적으로 짓밟힌다면 피해자의 영광은 땅에 떨어진다. 정의 실현과 화해를 통해 영광이 회복되기까지 그의 삶은 그 자리에 멈춰 있다.

“제 인생은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끝났습니다.” 동은보다 훨씬 더 심한 폭력 희생자의 고백이다. 바로 열여섯 살에 일본 군인에게 강간당한 후 위안부로 전락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다. 하루에도 열 명, 스무 명 군인의 배설물을 받아내야 하는 치욕적인 삶이 넉 달 동안 계속됐다. 해방 후에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음은 물론 가부장적 편견 때문에 오랜 세월 상처를 숨기고 살아야 했다.

그녀는 멈췄던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나는 일제의 위안부였다”라고 증언했다. “하늘을 바로 보지 못할 부끄러운 인생이었지마는… 그러나 지금도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은 피맺힌 한을 풀지 못해서입니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해방 후 46년이 지난 1991년, 그녀의 삶이 멈춘 지 50년이 지난 후의 증언이다.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위안부의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우리 자식이고 김 할머니가 대한민국이다.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는 국가에는 영광이 없다. 3·1운동의 정신을 표현한 ‘기미독립선언서’의 중심 사상 역시 영광이다.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손해를 입히거나 자존심을 다치게 한 정도가 아니다. “민족적 존영(尊榮·존귀와 영광)의 훼손”이라고 정의한다.

독립을 원하는 것도 단순한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정경대원(政經大原)으로 귀환(歸還)”하려는 것이라 한다. 여기 대원(大原)은 더 글로리의 원점(原點)과 같은 뜻이다.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에 멈추었던 “한강 물 다시 흐르고”(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 ‘삼일절 노래’) 죽었던 민족의 정신이 살아났다.

그건 그렇고 가해자는 영광스럽게 잘살고 있나. 더 글로리의 12명 빌런 중 누구도 영광스럽지 못하다. 살인, 육체적 탐닉, 마약, 탐욕, 배신, 욕설, 오만 등 오욕으로 가득한 삶이다. 기미독립선언서에 따르면 침탈자 일제는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신의와 의리를 저버렸고 “정복자의 쾌감을 탐”하다가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국가가 됐다.

꽤 오래전 일본의 어떤 기독교 단체가 방한해 우리 교회에도 온 적이 있었다. 과거 일제의 침략을 사죄한다며 단체로 90도 허리를 굽혀 정중히 경례했다. 나는 그날 일본의 영광을 보았다.

장동민(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