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제3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이란 전력망에 통신기술을 적용해 전기 공급자와 사용자가 실시간 정보를 교환해 서로 필요한 때 전기를 공급하고 사용하도록 해주는 망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저탄소 녹색성장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전기는 생산(발전)과 소비 패턴이 다른데 저장은 안 되는 관계로 수요·공급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남을 때는 버려야 하면서도 한순간 부족할 때를 대비해 여유 설비가 필요하다. 특히 날씨와 기후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 발전이 증가하면서 이 문제는 더 중요해졌다. 재생에너지는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우선은 필요한 전기 생산을 위해서도 그렇고, 궁극적으로는 탄소(석탄·LNG)경제에서 수소경제로 가는 유일한 대안이다. 원자력과의 공존은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재생에너지가 가진 변동성과 간헐성이 오히려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게 스마트그리드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예측과 전기 소비자의 다양한 소비 패턴은 만물인터넷(IoE)으로 수집된다. 이런 정보들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여기서 빅데이터가 생성된다. 그리고 인공지능(AI)이 수집된 정보를 실시간 분석해 유용한 정보를 생성시킨다. 전기 사용자는 앱(모바일)을 통해 정보를 실시간 확인하고 최적의 소비를 하게 된다. 소비 정보는 다시 생산자에게 전달돼 더 좋은 정보를 생성시키는 선순환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런 시스템의 효용성에 일찍 주목했다. 2005년 전력IT 10대 기술개발 과제 중 하나로 스마트그리드를 선정했다. 2010년 1월에는 2030년까지 전국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목표로 했다. 2011년 지능형전력망법을 제정하고 이후 매 5년 단위로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11~2013년 제주도에서 시범 사업을 했고, 2020~2023년 현재도 광주(8000세대)와 서울(3000세대)에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정부에서 발표한 제1, 2, 3차 기본계획을 보면 계획은 화려했으나 잘 안 되는 ‘이유’가 나열돼 있다.
생산과 소비 패턴이 다르고 저장이 안 되는 전기를 스마트그리드화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실시간 전기 소비를 기록해주는 스마트계량기(AMI)가 필요하고, 전기 생산과 소비의 시차를 보완해주는 전기저장장치(ESS)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연간 30조원 이상 적자를 내고 있는 한국전력이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다. 제도도 따라줘야 한다. 소비자가 요금이 싼 시간에 사용하려면 계시별(계절별·시간별) 요금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이 또한 AMI가 부족해 못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전력시장 소매경쟁 허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전력시장이 독점이다. 스마트그리드를 하면 전기요금이 쌀 때 많이 사용하므로 소비자 부담이 줄어든다. 전기요금 원가의 80% 이상은 발전과 송배전 원가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한전이 담당해야 한다. 소매경쟁은 원가 20% 범위에서 경쟁하게 된다. 민영화가 아니다. 새로운 사업자와 기존 한전이 서비스 경쟁을 하는 것이다. 2012년 제1차 기본계획에서는 스마트그리드 사업자에게 전력시장을 개방하고, 소비자에게도 가장 좋은 사업자를 선택하도록 해주겠다고 발표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약속이 실종됐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법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실종된 이유가 궁금하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고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