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 7월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새롭게 도입했다. IRP란 근로자가 이직·퇴직했을 때 퇴직금을 근로자 개인이 별도로 은퇴할 때까지 운용할 수 있게 한 퇴직연금이다. 여러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금을 한 계좌에 모아두었다가 노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는 식이다.
정부는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IRP 규모를 키워왔다. 2015년부터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적용했고, 올해부터는 이 한도를 900만원으로 올렸다. 연급여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지난해 IRP에 700만원을 입금했을 경우 올해 연말정산에서 115만5000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봤지만, 올해 900만원을 입금하면 내년 초 연말정산에서 148만5000원을 공제받게 된다.
이런 혜택에 힘입어 IRP는 퇴직연금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RP 적립금은 2016년 12조4000억원에서 2021년 46조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21년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도 295조6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40조1000억원(15.7%) 증가했다.
몸집은 커졌지만 퇴직연금이 ‘노후 안전판’이 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0%에 불과하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80%가 넘는 돈이 안전성 위주인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되면서 수익률은 높지 않은 실정이다. 또 퇴직연금 수급대상자의 98%가량이 연금 대신 일시금으로 돈을 타고 있다. 그만큼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수단이라는 인식은 아직 미약하다.
이에 따라 사적연금 시장이 성장하기 전에 국민연금 곳간이 먼저 빌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절벽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총인구는 2020년을 정점(5183만명)으로 2070년(3766만명)까지 가파른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올해 2199만명인 국민연금 가입자는 2060년 1251만명까지 줄어드는데 연금 수급자는 같은 기간 527만명에서 1569만명으로 3배가량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예상대로 2055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는 연금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내야 한다. 연금을 가입자에게 다 주기 위해선 소득 중 내야 하는 연금보험료 비율을 올려야 하는데, 그 비율이 2060년 최대 29.8%에서 2078년 35%까지 올라가게 될 전망이다. 한 사람이 매달 버는 돈의 30% 이상을 국민연금 비용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가 퇴직연금을 포함한 사적연금의 수익률을 개선해 국민연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퇴직연금의 중도인출 해지 조건을 강화하고, 퇴직 일시금에 적용되는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연금화를 장려하는 방안도 해법으로 거론된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