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관계 정상화하려면 일본의 성숙된 자세가 우선이다

입력 2023-03-20 04:02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렵게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의 후폭풍이 거세다.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야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굴욕 외교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사죄와 반성 표명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윤석열정부가 감수해야 할 정치적 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 정부의 노력에 좀처럼 부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독도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다는 식의 언론플레이로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아무리 다음 달 4년마다 열리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해도 관계 개선의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독도는 타협할 수 없는 영토 문제다. 이런 사안을 실무 방문 형식으로 마련된 정상회담에서 사전 준비 없이 거론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그런데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과 함께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고, 기하라 세이지 관방 부장관마저 기자들에게 정상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실이 즉각 부인했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이어 박진 외교부 장관까지 나서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지만 일본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대신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고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와 2018년 일본 해상초계기 위협 비행 사건까지 거론하며 우리 측의 양해를 구한 것처럼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상대국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기 곤란하도록 언론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예민한 양국의 현안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등 다시 불거진 과거사 때문에 망가진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는 점이다. 이는 양국이 신뢰를 회복했거나 갈등을 해결했다는 뜻이 아니라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한 출발점에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단초는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 제3자 변제라는 양보안을 마련한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 그랬기에 기시다 총리가 “어려운 결단을 내린 윤 대통령에게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표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조차 일본의 추가적인 호응이 양국의 선순환적 관계 형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학계에서도 과거사가 미래를 향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추가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여론에 일본 정부가 답해야 한다. 성숙한 자세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