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연민과 사랑

입력 2023-03-20 04:06

베트남계 미국 시인 오션 브엉은 한 인터뷰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면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연민과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저의 최고의 시는 두려움이 아니라 연민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얼마 전 한국에 번역 출간된 그의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은 베트남 전쟁 이후 세대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오션 브엉의 외할아버지는 베트남전에 파견된 미군이었고, 그의 가족은 필리핀 난민 수용소에 도착한 후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외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강대국의 폭력에 의해 태어날 수 있었던 동시에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난민으로서 오션 브엉의 삶은 그의 시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시 ‘노트의 파편들’에 등장하는 “폭탄 없음=가족 없음=나 없음”이란 문장은 이런 삶과 폭력 사이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6·25전쟁 이후 국내 문인들의 시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혹은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 살았던 이상 시인의 작품에 나타나는 것처럼 2016년 미국에서 출간된 그의 시집에는 폭력에 대한 감각이 쉼 없이 등장한다. 전쟁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폭력과 억압 속 하나의 개인으로서 미움과 두려움에 경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지지만, 오션 브엉은 두려움 대신 연민과 사랑을 선택했고 그것으로 시를 쓰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의 시집은 세련된 문장과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에 신음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타인에 대한 사랑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하다.

‘연민’의 사전적 의미는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다. ‘사랑’의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온갖 혐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타인을 연민하고 사랑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렵고 귀중한 것인지 생각한다. 오션 브엉의 시를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