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켰을 때가 골든타임인데… “마약 치료 받을 곳이 없어요”

입력 2023-03-16 00:03
국민일보DB

미국 유학 시절 마약에 손댄 A군(15)은 부모에게 투약 사실을 들킨 뒤 곧장 한국으로 보내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석 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자신을 중독자라 여기지 않았다. 병원 관계자에게 “퇴원하면 (대마를) 다시 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미국에서 몰래 들여온 마약을 할머니집에 숨겨놨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은 그를 계속 붙잡아 놓을 방법이 없었다.

10대 마약 사범은 갈수록 느는 추세지만, 이들을 치료할 병원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지정병원’ 21개 중 현재 중독자 치료를 감당하고 있는 곳은 인천참사랑병원이 유일하다. 나머지 병원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치료를 전문으로 하려는 의사가 없고, 병원에서도 마약 중독자를 관리하는 게 다른 정신질환자보다 훨씬 힘들어 기피하기 때문이다. 인천참사랑병원마저도 해독 치료와 회복 동기부여 위주로 운영된다. 중독자의 실질적 재활은 민간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쪽 역시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민간 중독재활센터 한국다르크 정도가 소수의 성인 남성을 받고 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병원장은 “정부에선 ‘마약과의 전쟁’을 치른다고 하는데 의무부대는 거의 전멸 상태”라며 “마약 수사 집중으로 마약 사범은 급격히 늘어가는데, 이들을 치료할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 관계자는 “국무총리 산하에 마약류대책협의회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마약사범이 초범으로 검거됐을 때를 치료 ‘골든타임’으로 본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자문위원인 박진실 변호사는 “10대들이 가장 두려워할 때가 경찰에 처음 왔을 때”라며 “검찰 송치까지 수개월 동안 어떤 조치나 처분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놔두는데, 경찰 단계부터 치료 프로그램들을 연결해줘야 한다”고 했다. 한 마약 치료 상담 전문가는 “마약 중독은 암과 같아서 늦을수록 치료가 힘들어진다. ‘병원에선 비밀보장이 철저히 이뤄진다’고 아무리 얘길 해도 부모들은 자녀 보내기를 머뭇거린다”고 말했다. 자녀의 마약 투약 사실을 알게 돼도 함께 병원을 찾는 부모는 극소수라는 얘기다.

간혹 병원을 찾아오는 10대 마약 사범도 있지만, 대부분은 치료가 목적이 아닌 감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병원을 이용한다. 마약중독 재활센터 관계자는 “수사·재판에 들어가면 양형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병원을 가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 의지로 병원에 가는 사람은 현실에서 잘 없다. 타의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병원 안에서 밀반입한 마약을 투약하다 적발돼 수사기관에 다시 넘겨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중독자끼리 같은 입원실을 쓰지 못하게 하지만, 휴게실·흡연실 등에서 자연스럽게 모인다고 한다. 천영훈 병원장은 “어떤 10대 중독자들은 ‘2~3년 더 놀다가 나중에 끊을게요’라고 말하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천 병원장은 “호기심이라도 마약에 손을 댄 건 범죄지만, 이후 반복하는 문제는 뇌 질환이라서 치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마약 중독 치료 권위자인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 역시 “단약을 위한 동기 부여와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약물법원이 따로 있어서 사법 시스템 안에서 중독자에게 체계적으로 치료와 재활 명령을 강제하고 감시한다. 한국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용현 백재연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