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얼굴을 보면서 거래 하나요. 다 텔레그램으로 하지.” 지난 13일 기자가 만난 마약 중독 경험자 8명은 하나 같이 텔레그램을 창구로 마약을 구했다고 했다. 10대 역시 텔레그램 채널로 들어가 음식 배달주문하듯 마약을 접하는 상황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20대 중독자 A씨는 “포털 검색으로 ‘○○○ 인증 딜러’를 쳐보라”고 했다. 검색창에 텔레그램 채널이 여럿 떴다. “여기가 마약방”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겉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 택시’ ‘XXX 엔터’ 등 기업 이름을 갖다 붙인 해당 방은 언뜻 보기엔 소액주주들이 모여있는 오픈 채팅방 같기도 했다.
A씨는 “‘국내 최대 규모 마약 광고 채널’로 알려진 이 방에 들어와 있는 이들만 2600여명”이라며 “최대 1만명까지 들어와 있는 방도 본 적이 있다. 딜러(유통책)와 마약 구매자들이 다 같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통해 입장할 수 있는 텔레그램 마약방도 10여개에 달했다. 마치 개미굴처럼 마약방 안에 또 다른 마약방이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나 더 존재하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각 방에 적게는 700명, 많게는 2500명가량이 자리잡고 있었다. A씨는 딜러마다 마약 종류별 가격표를 올려주고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10대 때부터 해외에서 대마를 접한 B씨는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삶도 더 마약에 종속됐다고 했다. 딜러들은 끊임없이 구매자에게 또 다른 마약을 권하는데, B씨 역시 딜러가 권한 필로폰에 빠지게 됐다. 그는 “딜러가 새로운 마약을 권하기도 하고, 한 번 해보라고 주기도 한다. 그렇게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조장한다”며 “그때부터 다른 마약에도 점점 더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약 구매자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다. 다른 20대 마약중독자 C씨는 “급전이 필요해 거래하던 딜러에게 나도 ‘던지기’를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보증금으로 선금 500만원을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던지기’는 약속된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놓는 비대면 유통 방식이다.
지난해 7월 텔레그램 마약방을 직접 운영하다가 적발된 고등학생 3명은 ‘상선’으로부터 마약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되팔아 돈을 벌려고 했다. 모두 텔레그램에서 만난 딜러 등을 통해 알게 된 수법이었다. 지난해 3월 발간된 ‘텔레그램 마약방 연구 보고서’(서울북부지검 이재인 검사)에 따르면 마약방 운영자는 거래를 자주 하면서 신뢰를 쌓은 매수자 중 일부에게 ‘인증딜러’ 자격을 부여하고 중간 판매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마약방에는 수사기관 요원도 잠행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방에서 얻는 정보만으로 딜러를 잡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마약방을 통해 구매자가 딜러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금전 거래도 비트코인 등을 통한 익명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금 추적도 어렵다.
일선 수사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마약류 사건 중 차명계좌를 이용해 대금을 전달하는 전통적 방식은 약 30%에 그친다고 한다. 대부분은 서로 신원을 모르는 사람끼리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가상화폐로 대금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마약방이 수사기관에 노출되더라도 기존 방을 ‘폭파’하고 금세 다른 방이 만들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 방 하나를 확인한다고 해서 방에 있는 사람들을 줄줄이 검거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여전히 오프라인상의 수사 비중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마약 사건 전문 김희준 변호사는 “요즘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게임이나 SNS를 통해 비대면으로 관계를 맺는다. 마약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끼리의 결속력은 더 커지는 상황”이라며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허용하고 있는 위장 수사가 마약 수사에서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백재연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