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은행권도 유가증권 595兆 보유… SVB 사태 남일 아니다?

입력 2023-03-15 04:05
국민일보DB
자금 위기 발발 이틀 만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유가증권 투자액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내 은행권도 채권·주식 등을 595조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3분기 말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 4대 시중은행의 채권·주식 등 투자 관련 누적 손실액은 9000억원에 육박했다. 금융당국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를 미루지 않으면 국내 은행권도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4일 국민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시중·국책·지방·인터넷전문은행 20곳의 채권·주식 등 보유 총액은 595조4200억원에 이른다. KB국민은행 80조2000억원, 신한은행 80조1000억원, NH농협은행 71조1000억원, 하나은행 67조5200억원, 우리은행 66조2800억원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3분기 말 채권·주식 등 보유액만 365조2100억원이다.

이외에 IBK기업은행(65조8000억원), KDB산업은행(55조8000억원)도 각각 50조원을 넘겼다. 토스뱅크(17조6000억원), 수출입은행(16조700억원), 한국씨티은행(12조1100억원), SC제일은행(10조7700억원)의 채권·주식 등 보유액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국내 은행권의 채권·주식 등 유가증권 투자 성적표는 마이너스다. 국내 은행 20곳은 관련 투자에서 지난해 3분기 말까지 4000억원 누적 손실을 기록했다. 4대 시중은행만 놓고 보면 적자 규모는 8900억원으로 더 컸다. KB국민은행(-5700억원), 우리은행(-2100억원), 하나은행(-1800억원) 순이다. 신한은행은 1700억원 흑자다.

SVB의 경우에도 채권·주식 등 보유 비중이 높았다. 고객의 갑작스러운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하던 미국 국채 등을 팔기로 했는데 최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린 탓에 18억 달러(약 2조45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뱅크런(예금 등이 한꺼번에 인출되는 현상)이 발생했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SVB가 파산한 이유가 유동성 부족이라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내 은행권에 적용 중인 LCR 규제 정상화 유예 조치를 한 차례 더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CR이란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 높은 자산을 1개월간 빠져나갈 외화만큼 쌓아두도록 하는 규제다. 금융당국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내 은행권의 실물 경제 지원을 쉽게 하기 위해 85%까지 일시적으로 낮췄던 LCR 규제를 오는 6월 말 정상화할 예정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SVB 파산 사태로 인해 세계 금융 시장이 경색될 우려가 크다”면서 “국내 은행권이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도록 LCR 규제 정상화 조치를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