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세부적인 일정(16~17일)이 발표됐다. 두 정상은 공식적인 회담 외에 도쿄 긴자의 오래된 식당 두 곳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긴 만찬을 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의 취향에 맞춰 일본 측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기업인이 마주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강제징용 해법의 후속 조치가 공개될 예정이고, 윤 대통령이 일본 대학생들과 만나 두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12년 만에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양국 정부가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한국에선 강제징용 해법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3명이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혔고, 야당은 “굴욕 외교”란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여론조사에선 모순되지만 엄연한 현실인 국민 정서가 뚜렷하게 읽힌다.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월등히 많은데, 강제징용 해법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훨씬 높다.
이런 여론은 양국이 처한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직 과거의 문제를 풀지 못한 터에 미래로 나아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게 쌓여가고 있다. 요 며칠 새 벌어진 일만 해도 그렇다. 미국에 이어 유럽도 자국 우선의 경제 장벽을 쌓으려 나섰고, 후퇴 없는 패권 경쟁을 천명한 중국이 미·중 외교 전선을 넓혀가고 있으며,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는 중이다. 지난 수십년간 적용돼온 세계 경제·안보 질서가 한꺼번에 와해하며 재편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새롭게 형성되는 경제 블록에서 국익을 지키고,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서 안보를 지켜야 하는 공통된 과제에 직면했다.
거대한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양국의 절박함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먼저 움직였다. 정치적 후폭풍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해법을 강행한 윤석열정부는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지만 감내하고 있다. 미래의 경제와 안보를 위해 언젠가 가야 하는 길이었고, 지금이 그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계속 가기 위해선 이제 일본이 제 몫을 해야 한다. 한·일 관계를 이기고 지는 문제로 여기는 양국 정치권 일부의 시각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함께 풀어야 할 일이고, 일본이 나서야 할 차례가 왔다. 애초에 강제징용 소송이 제기된 것도 돈을 받자는 게 아니었으니, 형식과 절차를 모두 떠나서 진정성이 관건일 것이다. 양국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함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진정 어린 호응을 일본이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