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챗GPT 시대의 대체 불가 조건

입력 2023-03-15 04:03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나보다 잘할 것으로 예견된 존재가 나타났다.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미국 의사 면허시험도 뚝딱 합격하고, 아이비리그 MBA 입학시험도 통과한 문이과 통합형 인재인데, 심지어 체력도 좋아 노동시간의 구애도 받지 않는다. 대화형 인공지능(AI) 솔루션 챗GPT의 등장에 환호보다 두려움의 목소리가 더 크다. 두려움의 근원은 대체 가능성이다. 이 시대에 ‘대체 불가’ 존재가 되는 것은 차별화 조건이 아닌 생존 조건이다.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가 인류에 선사할 혁신적 효용보다 인간의 대체 가능성이 더 선명히 보인다. 고물가와 저성장으로 생계는 여전히 힘든데 생존 조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진다.

인간이 만든 기술로 인간이 소외되는 역설의 시대지만 그렇기에 꼭 명심해야 할 명제가 있다. 네덜란드 대표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저서 ‘휴먼카인드’에서 말한 이 대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내심은 매우 고상하다는 것이다.” 기술의 가능성에 심취해 인간의 고유한 가능성을 잊기 쉬운 요즘, 박동하는 심장을 지닌 인간의 고상한 내면을 드러내는 사례가 있다.

인테리어 콘텐츠 커머스계의 슈퍼앱을 꿈꾸는 ‘오늘의 집’은 지난해 12월 ‘취향을 공유하면 리워드를 받는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큐레이터는 오늘의 집에서 판매 중인 제품 링크를 공유하고, 그로 발생한 수익의 수수료를 정산받는 방식이다. 이 같은 리워드 마케팅 프로그램은 ‘대체 불가’의 존재가 되기 위한 두 가지 교훈을 시사한다. ‘나누는 마음’과 ‘고르는 안목’이 그것이다.

링크 공유를 통한 보상 마케팅이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쿠팡의 ‘쿠팡 파트너스’나 마이테레사, 파페치와 같은 해외 명품 플랫폼의 ‘제휴 파트너’ 프로그램 역시 같은 방식으로 보상을 제공해 왔다. 다만 오늘의 집이 고객을 ‘파트너’가 아닌 ‘큐레이터’로 명하며 새로운 역할과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태도와 관점을 보여준다.

고객을 함께 성장 가능한 협력의 존재로 보는 선의의 태도가 경제적·경영적으로도 유효한 전략임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 증명됐다. 다른 SNS가 고객을 ‘이용자’로 계산할 때 유튜브는 고객을 ‘크리에이터’로 대했고, 그들과 광고 수익을 나누는 상생 전략으로 플랫폼을 키웠다. 기존 미디어 생태계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유튜브 혁신의 시작은 ‘나누는 마음’이었다.

가격이 책정되지 않았던 수고, 보상 없이 공유되던 정성의 가치를 알아보는 혜안은 인간의 고매함에서 비롯한다. 진정한 혁신은 인간이 이미 이뤄낸 시험 합격을 더 수월하게 하는 ‘인공’ 지능 기술이 아닌, 발견되지 않았던 정성에 눈길을 주고 빛을 밝히는 ‘인간성’에서 시작된다. 존중받지 못했던 존재들과 연결돼 내 몫의 이익을 기꺼이 나누고, 착취 가능했던 가치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선량한 태도는 인공으로 모방할 수 있는 지능의 영역이 아니다. 이는 데이터로도 증명된 성공 전략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정성’이 주목받고 보상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자산은 ‘고르는 안목’이다. 단 경쟁자는 빅데이터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는 일은 데이터를 통해 인간보다 많이, 빨리, 깊이 할 수 있다. 알고리즘 기반의 최적화 추천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래서 더 귀해진다.

남들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표현하는 안목은 자신 외에 누구도 생성할 수 없다. 내 눈에만 보이는 것, 내 귀에만 들리는 것, 내 코로만 맡아지는 것들에 집중해야 할 이유다. 거기엔 패턴도 질서도 없기에 더 매력적이며 대체 불가하다. 정서와 경험의 배합이라는 내면의 연금술로 탄생한 고유한 안목이 생존 조건이 될 것이다. 자신의 고유함을 찾고 ‘함께’의 위력을 믿는 인간적 온기가 우리를 대체 불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랜선이 아닌 감정으로 연결하는, 함께 가는 것이 멀리 가는 것임을 아는, 내면이 고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