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락 프로그램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유명 연예인이 번지점프를 시도하고 있었다. 점프대까지는 가까스로 올라갔지만 긴장된 표정에 말도 못 하고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다리도 풀린 듯했고 두려움에 난간을 꼭 잡고 있었다.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발아래 출렁대는 강물 속으로 추락할 아찔한 긴박감에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을까. 마침내 눈을 감고 푸른 하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떻게 뛰어내린 것일까. 무엇보다 자기 발목과 몸통을 단단히 묶고 있는 안전장치를 믿었을 것이다. 발목을 단단히 조여오는 아픔이 안도로 바뀌면서 공포를 이겨낸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70~80대 노부모들을 모시고 자식들을 키웠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는 오롯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최초의 세대다.
눈앞 현실로 다가온 은퇴 후 세상에 자신 있게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번지점프대를 용감하게 박차고 뛰어내리는 사람처럼 은퇴 후 생활을 즐겁게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점프대 앞에서 주저하듯이 은퇴 후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과연 내가 더 이상 돈을 벌지 않고 기나긴 노후를 버틸 수 있을까. 1인당 소득이 3만5000달러, 전 세계 23위에 해당하는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우리나라의 노후 빈곤율은 약 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평균 15%) 중 최고 수준이다. 과연 나의 노후는 어떨까.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도 국민연금이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퇴직 전 소득 대비 연금소득 비중)은 40% 수준에 그친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생활이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이조차도 불안하다. 국민연금(1층) 외에도 퇴직연금(2층)과 개인연금(3층)이란 ‘3층 연금’ 구조를 만들어 국가, 회사, 개인이 노후 준비를 하도록 유도한다. 노후에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연금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야말로 평생 월급봉투가 생기는 것이다.
70~80년대 직장을 다닌 월급쟁이들은 노란 월급봉투의 추억이 있다. 평소 아내에게 쥐여살던 공처가들도 노란 월급봉투는 ‘가장의 권위’를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안정적 수입에서 오는 힘 때문이었다. 그렇다. 연금은 퇴직 후에 자신의 권위와 삶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젊은 시절 노란 월급봉투다.
유럽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퇴한 백발의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것이다. 노인의 여유로운 삶에서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물론 그들은 노년의 행복을 위해 젊었을 때 꽤 많은 돈을 연금보험료로 납부한다. 국민연금 보험료가 OECD 국가 평균은 18%인 반면 우리의 경우 9%로 절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퇴직·개인연금 적립 수준도 낮아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연금액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개미와 베짱이의 올드 버전이 생각난다. 한여름 힘들지만 열심히 일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다는 동화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젊을 때 조금 힘이 들지만 좀 더 많은 준비를 하면 따뜻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는 번지점프대 발목을 조여주는 안전장치 대신 3중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연금 구조가 있다. 발목을 조여오는 작은 아픔이 푸른 하늘 속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오늘 내가 낸 연금보험료가 최소한 나의 노후 자존심을 지켜줄 것이다.
3층 구조의 월급봉투인 연금. 은퇴 후에도 늘 현역처럼 생활할 수 있는 노후 안전판이자 선진국의 조건이다. 100세 시대, 새로운 세상을 위해 인생 번지점프를 준비하자.
안철경 보험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