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주주권 행사의 칼자루를 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 구성을 놓고 ‘독립성 후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위원 30%를 전문가단체 추천으로 구성한다는 입장인데, 의결 과정에서 정치적 외풍이나 정부 입김이 커질 수 있다는 노동·시민단체의 우려가 나온다.
1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수책위는 이날 회의를 열고 신왕건 상근전문위원(FA금융스쿨원장)을 위원장으로 결정했다. 앞서 기금운용위는 지난달 24일 상근전문위원에 검사 출신의 한석훈 변호사를 임명한 데 이어 지난 10일 근로자단체 추천을 받은 원종현 상근전문위원의 연임을 확정했다. 사용자단체 추천 몫인 한 변호사가 수책위 위원장을 맡는 순번이지만 검사 출신 논란을 의식한 듯 호선으로 신 위원장이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책위는 이들 3명과 사용자·근로자·가입자단체 추천의 비상근위원 6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최근 논란은 공석인 비상근전문위원 3명 몫을 두고 일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기금운용위를 통해 결정하지만 민감한 사안은 수책위가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다. 2019년 3월 국민연금은 수책위 의결을 거쳐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한 바 있다. 삼성, KT 등 주요 기업 주총을 앞둔 시점에서 수책위 구성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 7일 기금운용위는 공석인 비상근위원 3명에 대해 학회 등 전문가단체 추천을 받아 위촉하기로 운영규정을 개정했다. 추천 후보 중 최종 3인을 복지부 장관이 위촉하기로 하면서 정부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정부 성향의 인사를 앉혀 주주권 행사에 정부 입김을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수책위는 CEO나 이사 선임 등 민감한 사안은 표결로 결정한다. 3인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자산운용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전문가들을 폭넓게 위촉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1기 수책위 전문위원을 지낸 이상훈 변호사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부가 입맛에 맞게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라며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였다면 단체 추천권을 그대로 두고 자격요건을 보완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원종현 위원도 “수책위의 결정 사항은 기금운용위원장인 복지부 장관에게도 보고하지 않는 구조일 정도로, 운영의 독립성을 최우선시해 왔다”며 “복지부가 위촉한 분들에 대한 독립성 우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한편 수책위는 15일 열리는 삼성전자 정기 주총을 앞두고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찬성’ 결정했다. 앞서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을 몰아준 삼성SDI와 삼성전기, 삼성전자에 대해 과징금 2349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수책위는 “(한 대표 등은) 해당 기간 중 임원으로 재직했지만 경쟁입찰 도입을 논의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